어떤 종류의 관계에서도, 상대를 실험실 쥐처럼 실험하고 관찰하는 종류의 밈이나 평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되긴 하지만, 별로 피차를 총체적 인간으로 고려하려는 노력 없이 몇몇 클루만을 가지고 그 가능성을 한정 짓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한 한 가지 기준점이 있다. 식당이나 기타 서비스업종의 종사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그 상황에서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보는 것.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실험하진 않는다. 어차피 연인이든 동료든 친구든, 만나면 먹는 건 당연하니까.
서비스 매뉴얼에 없는 ‘예외적인' 융통성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 본인의 기분이 상했다고 해서 그 적정성을 벗어난 정도로 상대에게 ‘인간적인 모욕,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는지, 그 과정에서 동석한 사람들이나 나에게 안하무인으로 무조건 편들기를 강요하거나 바라는지.
매뉴얼을 벗어난 ‘예외'를 요구하는 건, 다분히 이기적이며 상대(종사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서비스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고용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한과 책임의 한계가 명확하다. 그것을 벗어난 요구를 자주 한다는 건, 자기 생각밖에 못 하는 것이며, ‘먹고 산다는' 직업적 프로페셔널리즘 일반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본인의 상한 기분을 ‘지나치게, 인간적 모욕을 섞어서'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서비스 수행 과정에서 서비스 명세(specification)와 본인의 기대가 불일치했을 뿐이다. 묻고 따지는 거야 당연하다. 그런데 그 상황을 직면한 직원에게 인간적인 모욕이나 공격을 담아서 표현한다는 건, 역시나 직무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안하무인이며, 알바라도 해본 급식만도 못한 수준이라서 싫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이러한 상황과 행태에 동석자나 나를 동참시켜, 동조해주기를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것. 흔히 겪는 일이다. ‘너는 여자친구(혹은 친구)가 이런 꼴을 당하는데,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이냐'는 식의 메시지. 물론 상대의 서비스 내용이 약속된 것과 다르거나, 퀄리티가 심각하게 부족하면 당연히 따져야 한다. 그런 건 굳이 그렇게 요구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하는 편이고. 그런데 누가 봐도 ‘네가 심각하게 꼬장 부리는'걸로 밖에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내가 네 편을 든다면. 그러길 원한다면, 정말. 실망스럽다.
비슷한 상황은 흔히 겪더라도, 직전에 서술한 것 같은 상황은 몇 번 겪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대 직원에게 적당히 매너있게 내 사람을 단속하면서도, 내 사람도 속상하지 않을 만큼은 편을 들어주긴 했다. 그런데, 이왕이면, 이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직무와 사람을 구분하는 냉철함, ‘피차가 먹고사는 입장'이라는 것에 대한 배려. 다만 시간과 상황에 따라서 돈을 쓰고 버는 사람 입장이 바뀔 뿐, 같은 처지인데. 지금 이 순간 돈을 쓰는 입장이라고 해서, 그 짧은 역할극 안에 지독히도 잔인하게 서로를 짓밟아야 할까. 어차피 현대사회, 혹은 자본주의 사회는 musical chair이다. 서로가 소비와 생산으로 맞물려서 자리를 계속 바꿔야만 하는 관계. 약자가 약자를 혐오할 때, 그 사회는 인간이 생활할 조건이라는 가능성을 점차 잃는다. 나를 당신의 안하무인 한 행태에 동조해야 하는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 필터에 걸러진 사람은, 피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인이든 친구든 그다지 오래 보지 않았다.
요즘 자꾸 ‘싫다, 싫다'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서 ‘싫다'(이 탈출불가능한 싫다의 결계는 뭐지). 그래서 좋다로 바꿔 표현해보면, 그런다면.
나는 그래서 당신이 좋다. 꼼꼼하게 확인하고 따지는 면도 좋고. 그러면서도 이래저래 어릴 때부터 바지런히 일해온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게 좋다. 그래서 무엇을 묻거나 부탁해도, 그때 본인의 그림자와 자화상에게 말하듯 살가운 당신. 나나 당신이나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아니어도, 적어도 인간에 대해 갖는 애정과 최소한의 기대가 비슷하다는 게 보이는 그 말투, 그 눈빛. 그래서 당신이 좋다. 몇만 원 - 몇백만 원 사이의 그 짧고 덧없는 소비에서 굳이 ‘갑'이라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오히려 그래서 더 기품 있는 당신. 내가 좋아하고, 그래서 곁에 두는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