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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moon likely

Neon Fossel 2020. 10. 4. 00:18

흐리다. 맑은 날은 끝없이 어두운 하늘에 은하수까지 보이는데. 하늘이 대부분 검긴 한데 중간에 흰색 얼룩들이 두텁게 지나간다. 어떤 게 구름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동쪽은 서울이나 김포의 도심 조명때문인지 반사광에 비친 구름이 얼룩덜룩하다. 달은 철저히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쪽 하늘엔 그 흰색 얼룩들이 검은 하늘을 굵게 할퀸 것처럼 되어 있다. 뭐가 배경이고 구름인지, 달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그래서 그냥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멍하니 서있었다. 굳이 AR앱을 켜진 않았지만, 이 시간이라면 으레 달이 있어야 할 방향이었다. 2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서쪽 하늘 가운데에서 노랗게 번뜩 하는 윤곽이 드러났다. 노란빛, 아니 금빛에 가까운 색으로 이글거리며 벌벌끓는 달이었다. 왼쪽 아래 테두리만 살짝 드러났는데도 열렬히 이글거리는 게 보였다. 새삼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달이 이럴때도 있었나. 달을 가리고 있는 나머지 면을 보니 검은색이 구름이었나 보다. 하늘엔 검은색이 끊임없이 두터운데, 구름이 엄청 많이 낀 밤이구나 싶었다. 그럼 하얗게 얼룩덜룩 지나가던 무늬들이 빈 하늘, 달이 밝아서 빛나던 하늘이군. 달의 발악인가, 존재감을 뿜뿜하려는 노력이었군.

그러다 구름이 지나고, 잠시 벌어진 그 하얀 얼룩(이라고 생각했던 틈) 사이로 달이 완전히 드러났다. 정말 녹은 금처럼 이글거리는 황금빛 동그라미. 근데 왼쪽 위가 아직 다 채워지지 않아서 찌그러진 호빵맨 얼굴처럼 살짝 구겨져 있다. 내가 안경을 안 써서 잘못 보는 건가. 안경 안 쓰면 벌금이 더블로 40만원 이었는데. 밤운전을 하면서도 안경을 안 챙겼다니. 혼자 일하다가 출발이 늦어서 자정에 집에서 튀어나오느라고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나. 아직 추석, 즉 보름 하루 전날이라 달이 정말로 꽉 차지 않았을 거다. 내일이면 완전한 보름달, fullmoon을 볼 수 있겠지. 음력은 틀리지 않는다. 양력은 4년에 한 번 윤년에 하루를 늘려야 하고, 양력에서의 매 해 같은 날은, 사실 천체의 배치상으로 같은 날이 아니다. 음력은 그에비해 지독히도 정확하다. 달이 차고 기우는 사이클, 간조와 만조, 기후와 계절의 변화. 심지어 여성의 생리주기와도 정확히 맞는다.

달은, 틀리지 않는다.
달은, 틀리지 않는다.

그 뒤로 시커먼 구름 떼에 달이 가리워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는 걸 서너번 보고 시골집으로 들어왔다. 가리워졌을 땐, 그래도 있다는 걸 아는 안심함으로, 혹은 기다림으로. 나타났을 땐, 기다리던 만남이 반가움으로, 또 다가와서 가리워버릴 구름을 야속해하거나 살짝 두려워함으로. 그래도 잠깐 가리는 구름은 곧 지나가기도 한다는 걸 알게됐다는, 또다른 안도로.

오늘은 불타는 달을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