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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질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_Alt_03-04

Neon Fossel 2021. 7. 12. 17:51

그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다.

이번엔 밥이 핑계라니. 내가 혼자 사는 집에 쳐들어오겠다고 하질 않나, 굳이 같이 살던 형제도 없이 요즘엔 혼자 지낸다는 정보를 주더니, 오라고 하질 않나. 오면 치울것도 귀찮다. 놀아줘야 하는데 그러기도 싫고. 내가 노는 방식은, 같이 놀기엔 취미가 아예 같은게 아닌 이상 같이 할 것도 없다(음악, 게임, F1 알고리즘 타고 놀기, 글). 그거 아니면 좀 가만히좀 있고 싶은데. 가면 가는대로 불편하다. 핑계는 핑계로 완성해주기 위해 뭘 해먹는 척은 해야하는데, 난 정말 해먹기도 귀찮고 시켜먹기엔 물려서 아예 안 먹을때도 있다. 하물며 남한테 ㅎ…

두 가지 옵션 모두에 있는 컨텐츠는, 그래서, 좁은 실내에 둘만 있는 상황. [같이 눕는다]와 [눕지 않는다]로 나뉜다. 난 같이 누울 생각이 없다. 몸의 어디 한군데라도 야하거나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나도 어차피 여기저기에 좀 트러블이 있는 편이라 상대에게 뭐라고 할 건 아니지만, 얼굴에 트러블이 너무 심하다. 저걸 물고 빤다는 건 별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 주변에 남자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저걸 무시할만한 도대체 어떤 매력을 보고 그렇게들 달려드는 거란 말인가. 아님 그정도로 다들 궁한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그 긴 시간동안 눕지 않을 땐, 그 시간을 채울 뭔가가 있어야 한다. 이미 취미는 불가능하니, 사는얘기, 일얘기 등등, 뭔가 깊고 긴 얘기.

딱히 성향이 반대라거나 심각하게 못알아듣는 건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부담스러울정도로 호의적이다. 내 화제에 대해 궁금해하고, 맞장구쳐주고 등등.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짚는 ‘헛다리’가 좀 심한 편이다. 내 입장에선 그 뉘앙스로 말한 게 아닌데, 그런 뜻을 함축하고 있는 거 아닌데, 그런 맥락 아닌데, 그거 그쪽으로 연결되는 거 아닌데. ‘아~ 그러니까 이러이러이러이러하다는 말이군~ 블라블라블라’. 그렇게 헛다리로 시작한 턴이 제멋대로 한참을 가고 나면, 이걸 어디부터 개념을 바로잡아서 설명해야하며, 그러면서도 최소한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고, 상대를 무안하지 않게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막막하다. 그 양과 퀄리티 모두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넘긴다. ‘그래, 그렇지’. 그러고는 더이상은 혼선이 있을만큼 추상적이거나 긴 얘기는 아예 꺼내지 않게 되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것처럼, 저 헛다리로 짚은 잘못된 공감을 수정하고 반응해주려면 내 에너지가 갑절로 들어간다. 사서 일 만들지 말자. 그래서, 같이 눕지 ‘않는’상태에서도 할 게 없다.

언젠가는

자기가 했던 메롱스러운(?) 요리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었다. 레시피를 듣고 머리속에서 가상의 요리를 돌려보니 묘하게 맛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일것만 같았다. 두부에 새우젓에 참치에 계란물이라니. 잘하거나 못하는 건 이미 상관없었다. 예쁜 말괄량이가 소꿉장난 하다가 우습게도 뭔가를 망쳐놓은 것처럼, 한없이 귀여웠다. 그런걸 시도했다는 자체, 그리고 뭔가 망해가는데도 냅다 버리지 않고 해보려는 그 웃픈 절박함, 귀엽다. 멀쩡한 식재료를 곧장 음식물쓰레기로 만들더라도 사랑스러울 여자다.

다행히도 내가 요리를 못 하는게 아니라서, 자꾸 뭘 해주고 싶었다. 물론 하필이면 그 입에서 쭈꾸미(…)가 메뉴로 나올줄은 몰랐다. 양심적으로 솔직하게 2초는 멈칫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 바다의 사나이야. 해병ㄷ…갔다왔다고… 괜찮아. 저건 잘해봐야 저그(…)이다. 어쩔수없이 잠시 비위와 감각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살면서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거나 하는 것은, 최대한 배제하고 피한다. 완벽하게. 만약 피치못하게 어떻게든 맞닥뜨리고 주무를 일이 생기면 그냥 비위와 감각의 끈을 놓아버린다. 이건 그냥 물질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정도로 비장한 내면의 준비가 필요했다. 채소가 좀 적어서 아쉬웠던 기억이지만, 그래도 잘 됐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이런 소꿉놀이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 내가 같이 지내고 살만한, Habit-able한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기도 해서 뿌듯하다. 이때의 요리 얘기는 혹시라도 까먹을까봐, 언젠가 블로그에 써놓은 게 있다. 부디 그때로부터 내가 많이 잊거나 기억이 뒤바뀐 게 아니었으면.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떠들었다. 같은건 반갑고, 다른건 신기했다. 방향이나 방식이 같건 다르건, 똘똘한 사람이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방식도, 내 얘기를 곧잘 이해하는 것도. 몸은 이상하다(?). 보들보들한테 탱탱하다. 언젠가 이렇게 물어온적이 있었다. ‘하루종일 만질거야?’. 응. 사실 가만 냅두면 하루 종일 베게처럼 끼고 만질 것 같아. 

언젠가는 굉장히 억울한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이미 2-3일 같이 있었어서, 상대가 너무 갑갑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분명히 자던 것도 깨워서 굳이 인사하고 얘기까지 하고 나왔는데. 집에 왔더니 왜 자고 일어났는데 옆에 없냐고 난리다. 세상에나. 다시한번 기억나고, 밝혀두자면, 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개인시간이 너무 없다고 불편해할 정도만 아니라면, 그런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같이 있고 싶다. 너무 갑갑해할까봐 오히려 걱정이지.

(Alt. of Scene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