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하강 위로 달이 떠올랐다. 얼마전에 반이 조금 넘은 배불뚝이가 살찌고 있는 것 같더니만
그새 또 보름달이다. 오늘따라 노오란 빛이 강이랑 내가 건너고 있는 다리를 유독 밝게 비춘다. 운전중이라 달만 하염없이 바라볼순 없는게 아쉬웠다. 그래도 다행히 다리를 건너 한참을 끈질기게 따라와주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달이 자꾸만 빠르게 차고 기운다. 다음에 나쁜 일이 있을거면, 빠르게 가지 말아라. 다음에 좋은 일이 있을거면, 지금보다 더 휙휙 빠르게 가라.
꿈을 꿨다. 꿈속에서 네가 왜 거기에 있는 거지. 아니 여기라고 해야되나. 자면서 자고있는 공간에 대한 꿈을 꾸는건 AR도 아닌것이 이상하다. 그리고 그 대사. 그리고 그때 우리 뭘 하고 있던 거지.
이번주는 레이스가 없다. 이번주도 아닌 지난주말에 해밀턴이 이겼다. 적어도 다음주 레이스 전까지는 해밀턴이 이긴 여운이 계속되는 승리의 나날들이다. 바꿔말하면 다음주가 두렵다. 또 그 꼴보기 싫은 붉은 소 놈들한테 질것만 같아 불안하다. 1등이라서 응원한건데, 1등 말고도 응원할만한 다른 이유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반대로 해밀턴이 올해 챔피언이 아니게 되면, 나는 기계적으로 1등인 그 붉은 소 놈들을 응원하게될까 생각해봤다. 대답은 확실했다. 아니. 차라리 F1을 안 보는 한이 있어도 그놈들을 1등이라고 응원하진 않을 거다. 차라리 해밀턴의 커리어에 드디어 내리막이 시작된다면, 그 아름다운 추락을 지켜보겠다. 너희들의 승리는 게걸스럽고, 챔피언쉽을 잠시라도 리드하는 그때의 카리스마와 거기에 어울리는 품격, 아우라가 없다. 숫자만 1이 찍힌다고 다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럴 깜냥이 있어야 하거든.
얼마전 해밀턴과 감독인 토토가 메르세데스 팀에서 하고있는 Accelerate 25 캠페인을 홍보하는 영상을 찍어올렸다. 모터스포츠 커리어에서 다양성(인종 혹은 기타 배경에서의)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 그들은 선한 의지와 정의로운 마음, 그리고 그걸 당당하게 다른 모든 팀들과 관계자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그걸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화룡점정은 이거였다. 감독인 토토 볼프가 말했다. “우리는 이게 그냥 정의롭고 착한일이라서만 하는 게 아니다. 그게 결국은 더 나은 퍼포먼스를 가져온다고 믿고, 알기 때문이다. 해밀턴을 보면 알 수 있듯”.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의 근거가 곧 자기들 자신의 존재와 능력, 행적 그 자체였다. 해밀턴이 이룬 성과는 그냥 ‘흑인인데 기특하네’ 정도가 아니었다. 전 지구상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빠른 차로 하는 대회에서, 역사의 모든 기록을 깨고 가장 많이 이겼다. 그리고 그는 F1 역사에서 전무했던 유일한 흑인 드라이버였다.
압도적이다.
이쯤은 되어야, 평생에 몇번 팬질 안하는 나의 팬질 대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