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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Frame_04

Neon Fossel 2021. 7. 31. 17:12

어느날 집에 가는데 Street Car에서 Chiemi가 말했다. “나는 Toyota City에서 왔어”. 도시 이름에 저렇게 자동차회사가 박혀있다면, 현대가 먹여살리는 울산 정도를 생각하면 되는 건가. 근데 그러고보니 얘는 처음에 그냥 ‘일본에서 왔다’라고만 했었다. 일본애들도 자기 ‘도시’에 대한 정체성이나 자부심이 강해서, ‘교토에서 왔다, 도쿄에서 왔다, 오사카에서 왔다, 훗카이도에서 왔다, 고베에서 왔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일본’이라고만 말하길래, 남들한테 말하기 싫은 시골에서 와서 그런가보다 하고 더이상 안 물었을 뿐이다. 하다못해 외딴 깡촌 섬 오키나와에서 온 애도 ‘오키나와에서 왔다’라고 하던데.

Chiemi에게 들은 그 도시는 오히려 최근 와서야 알게된 우리나라 도시들의 몇몇 특징과 닮아 있었다. 울산 + 대구. 공업 위주의 도시, 그래서 남자의 비율이 엄청 높은 도시, 그래서 공업 위주로 돈을 벌어들이는 남자들이 흔히 ‘현재의’ 고소득에 갑자기 진입하면 기존의 지역색과 맞물려 에이징 이펙트를 무시하고 노인과 젊은이가 하나되어 엄청나게 보수적인 정치색과 문화로 공고해지는 지역. 도시 대부분 남자들의 일상이 공장이든 그 공장에 딸린 사무실에서든 균일하고 빡빡하게 쩔어들고 녹초가 되면, 당연히 그들이 찾게되는 위안의 종류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유흥가를 비롯한 상가 역시 다른 지방의 대도시나 수도권과는 다르게 ‘굉장히 균일한’ 특징을 보인다. 어디서든 빠르고 충분히 강렬하게, 원하는 정도에 맞춤형으로 성을 구매할 수 있는 방식. 굳이 어딘가 구석에 숨어들어 분홍 조명이 켜진 이상한 업소에만 있는 게 아니다. 웬지 배나온 직장인 아재들이 갈법한 휘황찬란한 싸구려 간판의 유흥주점 비스무리한 어디에서라도 다 가능하다. 물론 다른 지방과 수도권에도 당연히 이런 곳들은 있다. 다만 그런 곳들은 ‘저렇지 않은’ 다른 다양한 입맛의 상가들이 많다. 소비의 주체가 작업복이나 넥타이에 쩔어버린 아재들만 있는게 아니라, 상콤한 학생들도 있고 여자들도 있으니까. 저런게 필요한 사람들만 획일적으로 몰려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에선 여성에 대한 인식과 처우 역시 굉장히 이중적이고 극명하다. 우리나라 대구 출신의 여자들한테 들어본 ‘그들의 상경 전 대구생활’은, 출처와 연령대 및 직업군이 굉장히 다양함에도 꽤나 일관적이었다. 지역사회가 보수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여자에게 적용되었을 땐 일상의 꽤 여러부분이 족쇄처럼 작용한다. 입는 옷, 말하는 뽄새와 행동거지, 심지어 취미와 직업의 선택까지도. 한편으로 업소 여성이라던가, 그냥 일반 여성이라도 술집에서 오다가다 만난 사이한테는 굉장히 쉽게 소모해버릴 수 있는 대상 취급을 한다. 언어적 희롱은 기본에, 어쩌다 스윽 스치면서 문질문질 만지작거려도 상호가 대충 그런가보다 하는 기겁할만한 분위기. 울산에 직접 파견을 갔다온 지인이라던가, 아예 울산과 대구의 토박이었던 친구들에게 들은 말도 비슷했다. 그래서 저들 남성들이 그곳 여성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이토록 이중적이면서도 한편 일관적이다. 자기 여자든, 자기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든 어떤식으로든 독립적인 결정권을 가진 개별 개체로는 존중하지 않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렇게 찍어눌러서 ‘아무것도 못하게 목숨걸고 지킬’ 대상이냐, ‘소모해버리고 말’ 대상이냐의 정도.

Chiemi가 있던 곳은 그런 곳이었다. 울산과 대구는 적어도 저 두가지 특성중 하나만 하는데, 거기는 그 둘의 성격이 심지어 섞여있는 모양이다. 학창시절엔 싹다 딱딱하고 엄격한 사립학교에, 집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의 단독주택. 그냥 집에서 가라는 학교들을 가고, 취미는 딱히 없다시피 했다. 어차피 뭘 해도 된다거나 어딜 가도 된다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얌전히 조용하게 자라서 어디 괜찮은데 시집가는 것에 최적화된 일상.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아버지는 도요타의 사장급 임원이라고. 직책이 사장급이면 직급으로는 대충 전무급 이상은 되나보다. 자기네 집에선 손님이 오면 무려 ‘다도’를 한단다. 그냥 상투적 의미에서의 그 다과가 아니라 ‘그 다도’. 최근에 어딘가에서도 갑자기 이런 다과상이나 다도 용기를 들고 내와서 식겁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대학도 그냥 제일 무난한 사회학과+경영대 복수전공을 들어가서 적당히 중간만 갈 정도의 성적만 내고 있었다고 한다. 자기 흥미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으니까. 물론 대학도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라는 기준이 가장 중요했다고 한다. 세상에. 그정도면 집이 아니라 감옥이지 않냐고 묻고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갇혀있던 애가 캐나다는 어떻게 왔는지 물었다. Chiemi가 처음으로 약간 빙구같이 먼저 웃었다. 그냥 그대로 살다보면 그렇게 끝나버릴 것 같아서, 그 느낌이 싫었다고. 그래서 집에다간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거짓말하고는 과외랑 알바를 세개씩 뛰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 티켓이랑 일단 6개월간 묵을 방, 그리고 어학원 프로그램을 ‘장전’해놓고 출발 두시간 전에 공항에서 전화로 집에 통보해버렸단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서프라이즈라서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다고(서프라이즈를 일본 특유의 발음으로 외래어처럼 발음하는데 정말 귀엽고 섹시했다). 그… 이게 확실히 미친짓도 중간중간 해본 애들이 적당히 상대 입장에서 받아들여질만한 각을 보고, 적당한 사이즈로 사고를 친다고 생각했다. 생애 처음으로 사고를 치다보니 스케일이 정말 어마어마했구나 얘는.

집에서는 당장 돌아오라고, 그대로 가버리면 돌아와서 가만 두지 않겠다고 노발대발 했단다. 얘는 정말 벼랑끝에 선 심정이었는지, 끝까지 반대하겠다면 ‘아예 사라져버리겠다고’ 했단다. 그러고 비행기를 탔고, 일본이든 한국이든 캐나다까지는 시간을 거슬러서 직항으로 13시간쯤 비행한다. 그동안 부모는 지옥을 맛봤는지 공항 내리자마자부터 로밍따위는 개무시하고 냅다 전화와서 잘 도착했느냐, 도대체 머물 곳은 있느냐, 거기는 안전하냐 등등.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러고 며칠이 지나서는 아버지가 토론토 지사에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직원을 소개해주겠다고(…). 어학이나 생활 측면에서 도움을 주라고 말을 해놨으니 연락해보라고 했단다. 어떻게 도망쳤는데 그 마수에 다시 들어가나 싶어서 절대 거절했다고. 아마 자기가 아는 아버지라면, 주재원에게 그런 업무외적인 요구를 해놓고 나중에 본국으로 복귀하면 승진을 약속했다던가 그랬을거란다. 무튼 그래서 지금도 자기가 어디 살면서 어딜 다니는지는 가족이나 회사가 전혀 모른다고 했다. 집에서 옷이나 이런저런 물품들을 보내준다는 핑계로 주소를 알아내려고 덫을 놔도 눈치채고 철벽으로 방어한다고. 내가 그래서 물었다. 너 점원들한테 물어보거나 요구하는것도 쑥스러워서 잘 못하면서, 여기서 옷은 어떻게 사게? Chiemi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랑 가면 되잖아”

어… 좋았다. Yuka같은 애덜이랑 가면 되지! 하고 괜히 한 번 어깃장을 놓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진짜 그래버릴까봐 조용히 있었다. 저 긴 얘기를 쭉 듣고있자니 이해됐다. 거기로부터 도망쳤어도, 아직도 벗어내기가 진행중이었던 그 옷차림, 그런 행동들, 그런 수줍음이나 경계심, 낮은 자존감 등등. 꽤나 내밀한 얘기였다. 그래서 물었다. “근데 이런거 아무한테나 얘기 안하던거 아니야? 나한테 얘기해도 돼?”

“니가 ‘아무나’는 아니지”.

얘가 왜이러지. 나 오늘 잠 자지 말라는 건가.

“너랑 있으면 ‘안전하고’ ‘자유로워’. 어디서 뭘 해도 다 ‘괜찮고’ ‘재미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