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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Frame_05

Neon Fossel 2021. 8. 6. 18:27

여느때처럼 겁나 빠른 말과 일부러 못알아보고 못알아듣는 표현들로만 도배된 수업시간이 끝났다. 레벨이 높은 반의 수업은 들어가기에 경쟁이 치열하고 비싼만큼 악랄하고 착실하게 그 값어치를 한다. 이쯤되면 이거 어디까지 따라오나 보자고 인체실험하는 거 맞지? ㅎ…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피곤한 날이라 Chiemi랑 같이 좀 곱게 집에 가나 싶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마약상처럼 생긴 동유럽 친구들이 잡아끌었다. 대충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그 근처 어쩌구 ~ia로 끝나는 하얗고 무서운 나라에서 온 애들끼리 같이 다닌다. 너넨 너네끼리 몰려다니면 진짜 무서운데. 누가 말 안해줘서 여태 모르는 건가. 자기들이 끝내주는 스시 뷔페를 알아냈는데, 인당 30달러만 주면 고퀄의 음식을 아무거나 계속 시킬수 있단다. 여기선 그런 모든 곳을 ‘All you can eat’ 이라고 부르던데, 말이 좋아 올유캔잇이지 무한리필이잖아. 그런데가 고퀄이면서도 맛있을리가 있나. 그리고 오늘 토론토 하키 경기 하는 날이니까 그거 먹고나서 2차로 스포츠펍이나 가자는.

생각해보니 얘네 약속은 의도치 않게도 거의 항상 까내서 좀 미안하긴 했다. 그러고도 다음날 다다음날은 귀신같이 남미애들이랑 펍 가서 놀고 있다는게 얼굴책(..)으로 실시간 중계되니 얘네들은 섭섭하다고 댓글이나 현실펀치로 뻑하면 시비걸거나 심통을 부렸다. 아침에 엘베에서 인사하는 사람한테 허리로 파고들어서 테이크다운을 건다던가 등등. 근데 그건 어쩔수없이 같은 클래스에 남미 애들이 더 많아서 내 시간표랑 과제나 발표, 시험 일정을 걔네가 다 꿰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래서 그냥 오늘 하루는 이 하얀 통뼈의 민족들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어쩌구~코바, ~첸프, ~로프 이런걸로 이름이 끝나는 애들 심기를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건 안전 측면에서 별로 좋을게 없다(…농담이다. 농담이었을 거다 아마도).

Chiemi한테 물어봤더니 얘가 웬일인지 한 1분쯤 고민을 하길래 ‘오?’ 하고 기대했지만, 역시나 장고 끝에 당연히 안 따라온다고 해서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근데 오늘따라 이상하다.

-이따가 따뜻한 블랙커피랑 플레인 머핀 사다줘.
초코칩이나 건포도 절대 없는걸로 ㅇㅅㅇ

 

(.....?! 일단 으이그.. 이이뻐 ^ㅡ^!! 옆머리 토닥토닥)

근데 뭐지. 한번도 약속 끝나고 늦게라도 오라고 먼저 한 적도 없고, 심지어 뭘 사오라고도 먼저 말한적은 없는데. 이거 증세가 심상치 않다. 일단 친구들이랑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가면서 Yuka한테 문자로 증상(?)을 의뢰하고 번역(?)을 부탁했다. 그 결과는 정말 뜬금없음의 무한대 제곱과도 같았다.

-Chiemi가 요새 안 그래도 걔네들 얘기를 몇 번 했었어
-무슨얘기?

-거기에 Sophia랑 Juliana, Alexandra 있지?
-어

-내가 인스타랑 페친하면서 걔네 프로필을 Chiemi한테도 보여줬는데, 걔네가 스튜어디스랑 모델 준비하는 애들이더라고
-그거야 그렇지. 하얗고 마른애들이 제일 하기 좋은 직업이니까

-그게 신경쓰이나봐. Chiemi는 자기가 키도 걔네보다 작고 예쁘지도 않다면서 계속 그랬어. 너는 동양인 치고도 크니까 걔네랑 있으면 자연스럽고 잘어울린다고
-아니(huuuuuuuuuuuh……) 내가 맨날 누구랑 붙어다니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거지 진짜 ㅡ.ㅡ

-넌 가끔 몇몇 군데에서 Brilliant하게도 멍청할 때가 있어. 그 머리로 공부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니
-그 소리는 평생 지겹게 들었어. 무튼 고마워. 너한텐 아무 얘기 안 들은척하고 잘 해결해볼게

-멍청한 짓 할거면 차라리 미리 얘기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