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
애플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의 철학이나 테마, 혹은 라인업이 오래간다. 함부로 뒤틀어버리거나 내던지지 않고 오래 가꾸는 편. 물론 하드웨어의 디자인이나 호환성(특히 규격), 또는 소프트웨어로 봤을 때 애플 생태계 내의 몇몇 큰 변곡점이 있긴 했다. 그래도 타사가 매 시즌마다 완전히 다른 테마를 가진 제품을 내거나 자사 전용 앱을 아예 갈아엎기 / 혹은 그냥 없애는 것을 보면 이들은 처음의 그 ‘곤조’를 그나마 가장 유지하는 축에 속한다. 함부로 제껴버리지 않고 그렇게 오랫동안 욕먹고(알겠지만 애플을 가장 진국으로 까는 것도 역시 앱등이다) 고치고를 반복하기 때문에 하드웨어 건 소프트웨어건 생긴 건 거의 십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은데, 세세한 디테일과 실사용 측면에서 계속 최적에 가까워진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긴데. 와우도 비슷하다.
앞서 서술했듯 모든 기기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삼성(즉 갤럭시)을 쓸 때도 남들은 관심조차(물론 지금도, 슬프게도 거의) 없는 그놈의 갤럭시 생태계, S-생태계를 써보려 엄청 노력했다. 지금의 이 애플 간증문(…)을 쓰는것에서 계속 증명하려는 것이지만 난 오히려 심각한 삼엽충에, 삼성을 꽤나 써보고 느낀 것이다. 그리고 무려 꽤 최근까지도.
삼성 앱들은 그냥 자꾸 없어졌다(…). 그나마 안 없어지고 버티는 노트 앱이나 가장 기본적인 일정 앱을 생각해보자. 그마저도 굳이 S-어쩌고를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런 앱들을 쓰면, 데스크탑까지는 삼성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바일에서 작업한 게 웹이나 데스크탑 환경에서 누락될까 봐 불안하다. 동기화 설정이나 계정 설정을 하면 당연히 되긴 한다. 근데 여기서도 그놈의 ‘내꺼 써보라니까는’이라는 무턱대고 돼먹지 못한 근성이 발휘되는 바람에 그걸 망친다. 아무리 계정이랑 동기화 설정을 해도, 일정을 처음 작성할 때 기본 앱 설정이 자꾸 삼성 캘린더 위주로 바뀌어버리는 비슷한 현상. 이건 어떤 갤럭시 앱을 쓰든 똑같다. 그러고 한참 멍 때리고 있다 보면 구글 캘린더에는 일주일치 일정이 싹 다 빠져있다. ‘그 삼성 앱’이 안 깔린 데탑이나 폰에선 모르는 일이 되어버리는 거다. 심지어 본인들(삼성) 폰은 구글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서 기본 구글 캘린더가 깔려있다. 그럼 그냥 구글 캘린더를 쓰면 된다. 이런 식이다.
이런 문제의 근원은 앱-웹 간 전환성이 상당히 구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노트 앱을 갤탭 헤비유저로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 해봤는데, 동기화나 로딩도 너무 어렵고, 다른 장치에선 끽해봐야 불러온 걸 보는 수준이 다였다. 결국 나중에는 노트 자체 파일을 백업해두고, 출력은 PDF로 해서 다른 갤럭시(…) 기기로 옮겨서 봤다. 폐쇄적으로 가둬놓을 거면, 적어도 가둬놓은 만큼 다른 것을 찾을 필요는 없도록 생태계 내에서 호환이나 전환이 잘 되어야 한다. 근데 앱이라는 포맷에 가둬놓기만 하고 심지어 그 갇힌 계는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그럼 누가 갇히려 하겠는가. 애플은 심지어 그 폐쇄적이라는 애플 메모(를 비롯해서 약 20가지 넘는 뼈대 있는 서비스가) 자체도 웹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그래서 오히려 데스크탑이나 공용 PC를 뭘 쓰든 별 상관이 없는 수준이다.
제일 큰 건, 자꾸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겉에서 그냥 핥아보고 느낀게 아니다. 주변 지인 중에는 삼성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는 사람이 줄잡아 대여섯은 된다. 그들로부터 들은 건 사실 유저 입장에서 느끼는 절망감보다 더욱더 처참한 현실이었다. 모르는 편이 나을 정도. 삼성 전용 앱 중에서도 노트와 일정, 그리고 백업 이 딱 세 가지를 제외하고는 채 2년이 가지 못했다. 핸드폰 교체주기가 주로 2년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기계 하나를 다 쓰기도 전에 그 생태계의 앱이 사라져 버렸다는 말이다.
갤럭시 스토어에 있는 앱은 더 가관이다. 대부분 삼성이 사실상 사버렸거나, 사버린 것과 비슷하게 지분을 잡아먹고 간섭하는 식으로 들여놓은 앱들이다. 그래서 원 개발자는 그 스토어에 들여놓은 이상, 사실상 팔아넘기고 나서 손 놓는 것과 비슷한 상태. 그렇다고 삼성 입장에서 이걸 완전히 인수해서 개선을 하거나 어떻게 하지도 않는다. 그냥 매출회전이 안되고 이용률이 떨어진다 싶으면 방치하다가 내려버리는 것이다. 덕지덕지 붙은 광고를 보는 불쾌함까지 참아가면서 그 스토어에서 빠득빠득 찾아서 설치하고 업데이트까지 꼬박꼬박 해줬는데. (무려 며칠 전에서야 앞으로 갤럭시 스토어에서 광고를 내리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대단하다. 십수 년이 지나서 이제서야.)
그 생태계를 심각하고 부지런하게 써보려고 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맥빠졌었다. 간신히 모든 걸 그 방식대로, 그 위주로 싹 다 옮겨놓고 대충 6개월-1년 미만으로 좀 써볼만 하면 아예 앱 자체가 더이상 지원을 안한다는 메세지를 보는 게 다반사였다. 그전까지는 에버노트, 드랍박스, 구글드라이브 등으로 아예 넘어가기 전에 그나마 계속 근성을 가지고 그쪽 생태계를 시도해보고 있었는데, 저렇게 수없이 버려지고 난 뒤에 깨달았다. 머물데가 못 되는구나. 그래서 대부분의 사용자와 나는 저런 크로스 플랫폼 클라우드 서비스로 넘어갔고, 그건 더이상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갤럭시에 갇혀 사는게 편하다는 그 눈먼 구실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애플처럼 본인들도 잘 할때는 이 점이 ‘아 이런게 [애플에서도 안 불편하구나]’가 되지만, 저런 상태에선 [갤럭시를 굳이 쓸 필요가 없구나]가 되는 마법. 같은 현상이 어디서는 호환성과 확장성이 되고, 어디서는 탈출과 전환을 위한 빌미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건, 애플 기계로 한번에 갈아타지 않고 4-5년간 천천히 갈아타면서 그 이후에도 부모님 폰과 친구들, 직장동료들 폰을 며칠씩 사실상 뺏어가며 폰으로 치면 S5, S7, S9, S10, S20, S21정도의 세대를 태블릿과 랩탑까지 싹다 겪어보고 느낀 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여기까지가 나태주 시인의 버전이라면
너는
첫눈에
한눈에도
그리고 지금도
예쁘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