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대현이 형은 요즘 만나는 사람 없냐고 류한백이 물었다. 대현이 형은 자기 상태를 ‘황혼 이혼’에 빗대며 주접을 떨었다.
대현이형 애인은 90이었다. 89인 나랑도 여섯 살 차이인데 어지간히 어린 애인을 만났다. 성별 때문에 이걸 참 제수씨, 형수 둘 중에 뭘로 표현할지 혹은 그 둘 다 틀린 건지 애매해서 걍 ‘대현이 형 애인’이라고 표현한다. 영어 번역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가 공연할 때 주로 앞 테이블 2-4개는 항상 비워 놓는다. 작은 공간에서 음압이 워낙 센 세팅으로 공연을 하니 관객들의 귀를 보호하려 + 우리 짐도 좀 놓으려 겸사겸사.
항상 그 테이블에는 우리가 매니저(라고 억지로 주장했지만 본인은 알선자 정도로 생각하는)로 부른 인형이와 그 대현이형 애인이 같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도 사진을 참 여러 장 찍었다. 대현이 형의 출판기념회와 사진전에 갔을 때도 항상 맨 앞에서 그렇게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귀를 기울여 듣던 사람이었다. 행사 앞뒤로 인사는 했고, 뒤풀이에도 한두 번 앉아있다가 간 적이 있는듯 했지만 주원 누나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몇 번이라도 오래 해보진 않았다.
그러다 아마 1-2년쯤 전인가. 어느날 알콩달콩 잘 사냐고 물었더니 헤어진 지 6개월이랬다. 6년을 같이 살고, 헤어지자 그쪽에서 나갔다고. 물론 다수의 일반적인 이성애에서도 6년 씩이나 같이 살다시피 하거나 사는 경우는 드무니까 별일 아닌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냥 이성애에서 6년 동거하던 여자친구가 떠난 것처럼, 딱 그만큼에 맞는 반응을 보여줬다. 형은 이런저런 자세한 얘기는 안 했던 걸로 기억한다. 했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건가. 그럴리는 거의 없고.
게이들의 연애(동거) 1년은 이성애자의 결혼생활 10년과 맞먹는다는 우스게소리가 있다고 했다.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도 압축적으로 다사다난하다는 거겠지. 애초에 김조광수 부부처럼 어떤 신념 때문에 대놓고 동성 결혼식을 해버리는 게 아닌 이상, 다른 게이들은 사실상 그런 동거가 이성애로 치면 결혼과 다름없다. 다만 어떠한 법적인 구속력도, 제약도 없는. 대신 구속이 없다는 건, 그만큼 사회 안전망에서의 어떤 혜택이나 자격을 가질 수 없다는 것도 된다. 게이들의 경우엔 대부분 가족과 연을 끊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하다못해 작은 마취가 필요한 시술 정도를 하려고 해도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될 수 없다. 그 외 의식주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제도로부터 혼인 가구로 인정받지 못해서 감수해야 할 상대적 불이익도 많다.
그런 외부환경의 난이도도 최상급인데, 더 문제는 당사자 본인들이다. 물론 게이가 동거하는 모든 경우가 다 이성애자의 결혼 비슷한 성격을 띠는 건 아니다. 다만 이성애의 결혼과 같은 결심을 했을 경우를 상정한다면, 이건 새로운 국면이다. 법적 구속력과 사회적 인정. 그것들은 실상 내실 측면에서 이미 끝나버려도 시원찮을 관계에서 은근히 관성 혹은 비빌 언덕으로 작용하며 관계를 지속하게 한다. 그게 결과적으로, 액면 그대로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에겐 그게 없다. 그건 자유일수도 혹은 불안일 수도 있다. 법과 제도 혹은 사회적 통념이 그 유지를 강제하지도 않고 본인들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 그래서 이들의 행동양태를 관찰하거나 기록들을 보면, 결혼이라는 그 세레모니 이후의 실제적인 삶에 대해 겉이 아닌 속을 여실히 볼 수 있다. 껍데기나 관성이 없이 진짜가 지속되는 동안만 존재 가능한 연결. 쉬이 우러러보거나 동경할 대상은 아니다. 그저 참 거품 쏙 빼고 담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살벌한 실험인 것만 같다.
남자들은 결혼을 ‘결과’로 받아들이고, 정작 결혼생활이 시작되는 순간 여자 자체에 대한 의지와 생활에 대한 결심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는 소리를 어디서 얼핏 들었다. 마치 감가상각이 비용으로 발생하듯, 인간은 어떤 환경에라도 점차 익숙해지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당연히 텐션과 한계효용은 떨어진다. 그런 자연스런 커브를 제외하고라도, 나는 저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인가. 그런 것의 실마리를 이들을 통해 얻을 수도 있다. 나에게 결혼은 ‘결과이자 결승점, 도착인가’ 혹은 ‘시작’인가. 내가 Habit-able 한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시작하는 쪽이었으면. 그 시작과 과정이 즐겁고 든든한 사람이었으면.
그래서 형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1년을 그들의 10년으로 치면, 자기는 60년 쯤 결혼생활을 하다가 황혼이혼을 한 노친네와 다름없다고. 물론 항상 분위기 때문에 넘어가 주긴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개소리다. 20대 중후반까지 이성애를 할 때도 그 학교에서 어지간히 예쁘다는 여자랑 거의 다 자봤다는(…) 자타공인의 전설이 있을만한 인간이었던 데다가 섹슈얼리티가 바뀌고(? 확장되고? 그러고 보니 이 문제는 다시 물어야겠다) 나서도 그 뚫기 어렵다는 게이 씬에서도 잘 먹히는 사람이다. 저거야말로 ‘못’이 아니라 ‘안’ 이지.
그 덕에 마음 수련한다고 논문은 더 치밀해지고 인테리어와 요리는 좀 섬뜩한 수준에 이르렀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근 15년간 각각의 다른 취미로 따로 놀거나 묵히던 사진, 영상, 노래를 짬뽕해서 완전한 자체 제작 오리지널 소스로만 도시 풍경이나 정물 배경에 시를 담은 영상을 찍어내고 있다. 사람이 사랑을 하지 않을 때 엄한 풍선효과로 튀어나오는 다른 아웃풋을 보면, 사랑이라는 게 참 많고도 오묘한 에너지가 들어갔었다는 것의 반증인것 같기도. 그래서 사랑은 종합예술인 건가. 사랑 하나를 잃고 열 가지 재주가 만개할 것이냐 vs 사랑으로 그 모든 게 종합되고 집중된 상태에서 주변 효과로서의 향기를 얻을 것이냐. 둘 다 오락가락하면서 경험해본 바 후자가 낫다. 남들은 이별의 공허함과 슬픔을 소비하는 것 자체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 화자이자 당사자인 창작자나 예술가 본인에게는 그게 끔찍한 출혈이다. 선혈이 낭자한 비단과도 같은 것. 누군가는 절규하듯 토해낸 피인데, 그게 남들에게는 잭슨 폴록의 현대미술처럼 무작위의 씬박한 아름다움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같은 연주나 음악이라면, 사랑하는 우리애기한테 해주는 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다. 같은 시나 글이라면, 어여쁜 너를 느끼고 만지듯 쓰는 글이 행복하다. 그들의 슬픔이나 공허함이 기품 있고 심지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지불된 비용 혹은 바쳐진 제물이 바로 그런 행복이라는 비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왕 선택하려면 행복을 선택하겠다.
책이 또 나온단다. 이 글이 아닌 예전 글에서 형에 대해 쓴 부분이 몇 있다고 운을 뗐더니 내놓으라고 난리다. 그러고보니 이미 줬나? 메일 안 보면 기억이 안 나네. 그 정도 분량이면 돈을 받아도 될 정도인데. 이제 꽁으로 출연하는 건 안 되지. 어딜 맨입으로.
이번엔 김대현 편이었다. 어쩌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