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emi가 아까부터 졸다 깨다를 반복해서 상태가 애매했다. 아예 넉다운은 아니니 굳이 들쳐업고 갈 정도는 아니였고, 그렇다고 옆에서 혼자 알아서 걷게 냅두기엔 가끔 비틀비틀 해서 거의 안고 걷다시피 해야 하는. 그래도 현관에 들어오니까 신발은 알아서 벗는구나.
그걸 보고 그래도 지금은 정신이 좀 있나보다 싶어서, 방을 먼저 들어가는 건 좀 실례인 것 같아 본인이 먼저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내 옷깃을 조그만 애기손 같은 손으로 꼭 잡는다.
-가지 마.
-응? 아니야 가는 거.
-가버리는줄 알고 불안했잖아. 나빠.
현관의 센서등이 위에서 내리쬔다. 어떤 일상에서는 있는지도 모를만큼 굉장히 지루하고 뻔한 그런 조명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마치 박물관의 조명처럼, 혹은 무대의 조명처럼 서로를 굉장히 주목하게 하고, 심지어 섹시한 조명이다. 맥락에 따라 상황은 바뀌고, 또한 상황에 따라 맥락 역시 바뀌는 변주.
오늘 내가 계속 당하기만 했는데, 어쭈, 너도 당해봐라.
앞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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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본 동공이 커진다. 카메라 렌즈 움직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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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허리를 감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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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으로 깍지를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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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입술을 먹어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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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정말 닿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걸고 이마를 맞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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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가 들린다.
나한테도 너무 크게 들리는 내 심장소리를 뚫고
이 조그만 가슴이 뛰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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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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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there?
-…Yes, We are… on the same pag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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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순진한 눈빛으로 초롱초롱 심쿵심쿵 이런 거랑은 거리가 멀었다. 똑바로 쳐다보는 눈빛. 가르마가 8:2인 것 뿐만 아니라 앞머리가 살짝 베레모 혹은 장식처럼 비스듬하게 내려오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내려온 앞머리, 끝이 안으로 살짝 말려있는 생머리. 진한 검정 머리카락. 옆으로 날렵하면서도 큰 눈, 갈색의 테두리 가운데를 꽉 채운 검은 눈동자. 화장을 그렇게 하얗게 했어도 목선이랑 가슴팍까지 다같이 하얀 살결. 눈밑 광대에서 적당히 둥글면서도 갸름하게 내려온 턱선. 너무나도 작아서 손가락을 접은채의 내 손보다도 작을 것 같은 얼굴. 그리고 그 끝에 점처럼 찍혀있는 입술. 코랄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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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이한 생물이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당당하게 맞서듯
그렇게 당당하게 본인의 스탠스를 밝히듯
나를 가지겠노라고 주장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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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에서 봤던 그런 모습과 비슷했다.
자신의 존재와 원하는 바에 대해서 가지는
그런 귀족적 당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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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는 확실히 못박았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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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마시겠어.
너를 마시고 취하겠어.
아니, 취하면 이걸 다 담을 수 없으니까
그냥 너한테 푹 젖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