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쿤으로부터 100년 남짓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 세상도 보기에 따라 저 두 가지 영역이 상존한다. 특정 기술, 학문, 분야를 통으로 싸잡고 뚝뚝 떼어서 어떤 것은 현상 구제, 어떤 것은 진리 추구라고 태그를 붙일 순 없다. 같은 분야/학문/기술이어도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양태를 띠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클래식 음악이 그렇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이데아 혹은 노스탤지어가 낭만주의 이전 시대의 음악에 있기에, 그때의 음악을 얼마나 잘 복각하느냐에 첨단으로 목숨을 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을 현대의 대중인 우리가 어떤 맥락으로 향유할지에 대해 더 고민을 하기도 한다.
IT 하드웨어 테크놀로지도 마찬가지다.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들춰보지도 않았던 분야가 테크 성능 덕질인데, 요즘 가끔 영상이나 주변의 종사자/헤비 소비자 지인들을 눈팅하면 기겁할 정도다. 다 쓰지도 못할 스펙을 굳이 찍어내거나 조합하려고 저리도 복잡하고 지갑 아프게 난리 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에게는 그저 높은 성능을 경쟁적으로 지향하는 것, 그 자체가 치열한 드라마이자 아름답고 선한 것이다(No offense, 내가 F1을 보면서 흥분하는 기전도 비슷하다. 저것이 문명의 기술이다! 우리는 역동적으로 첨단을 향해 산-업하며 약-진한다ㅏㅏㅏㅏ - 닥쳐... 내면의 이 끔찍한 혼종아…). 반면 그것이 사용자(혹은 본인)의 경험을 어떻게 바꾸거나 개선할지, ‘현재의 현상’에 대해 질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