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하는 날 이른 저녁이나 오후에 잠깐 분리수거를 하거나, 아니면 주말 대낮에 느지막이 드나들 땐 가끔 지나가는 아저씨들의 편한 동네 복장을 볼 일이 있다. 그나마 밤에 퇴근하다 마주치면 나도 노래 들으면서 멍때리고 다른 데를 보거나 애초에 어두우니까 잘 안 보이는데, 낮이 가관이다. 대낮 햇살에 비친 앙상한 다리와 좁고 처진 어깨. 어쩌다 마누라랑 같이 탄 아저씨라도 있는데 자기 마누라랑 덩치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말랐으면 정말 볼만하다. 그냥 별로 남자라기보다는 휘청거리는 이쑤시개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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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젋었을 땐 뺑뺑한 얼굴과 머리카락 가지고 장난질 치기, 옷빨로 대충 커버하기로 넘어갔을 거다. 나이가 적당히 든 지금도 밖에서는 제복이나 정장 혹은 작업복에 가려서 잘 안보일 거다. 근데 저렇게 편한 동네 복장이나 캐주얼을 입으면 나이빨이나 장치로 가리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다. 톡 치면 우수수 쏟아질 것 같은 이쑤시개 더미. 같은 남자가 봐도 진짜 깨는데, 저걸 데리고 사는 여자한텐 남자로 보이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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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체질상 찌는걸 걱정해야지 마를 걸 걱정할 처지는 아니긴 하다. 그래도 혹여나 저렇게는 되지 말자.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여러 동물들은 번식 전략, 즉 성선택에 따라 암수 둘 중 하나가 더 크고 화려하게 진화했다. 암컷이 훨씬 크고 화려한 어류들이 있고, 반대로 공작새는 수컷이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크고 화려하고. 사자도 마찬가지로 수컷이 화려하다. 인간은 여러 볼륨감과 곡선은 여자에게서 찾지만, 큰 양감이나 질감은 수컷에게 찾는다. 인간도 애초에 큰 수컷을 성선택하는 부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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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간의 성선택에는 굉장히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하지만 신석기 이후로 그닥 진화하지 않은 우리는(사실 문명의 변화가 빠를 뿐 신체적/본능적 진화가 따라갈만한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얼마 안 됐다) 그 당시의 기준과 본능이 적잖이, 사실은 아직도 굉장히 큰 비중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당시의 기준이 무조건 동물적으로 ‘큰 것이 아름답다’라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관리, 성격, 성장기 및 최근의 건강과 환경이라는 히스토리컬 데이터의 결과이며, 앞으로의 생육과 번식, 위험으로부터의 안전, 쓸모(…) 등 꽤 여러 가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정보의 수용자 입장에서 무의식적으로라도 그걸 해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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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키높이 깔창에 목숨거는 이유, 여자들이 소개팅 주선자에게 가장 많이 묻거나 요구하는 게 ‘키 큰 사람, 키가 작지 않은 사람, 듬직한 사람’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한테 소개팅이 들어올 때도, 혹은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소개자 입장에서도 정말 지겹게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 몸을 저런 식으로 방치하는 건, 그냥 상대방이 이성적인 욕심을 아예 버리고 게을러서 도망가지 않기를 무기력하게 바라는 거나 다름없다. 아줌마들이 총각들의 듬직한 어깨, 등짝, 가슴근육, 허벅지에 환장하는 걸 직접 경험해본바, 대부분 게을러서 도망은 못 치더라도 욕심은 꽤나 오래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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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나도 아마 둘중 하나일 것이다. 타고난 몸이 두껍더라도 게으르게 운동을 안 하면 팔다리에 근육은 빠지고 배는 나오면서 전형적인 거미형 체형의 아저씨가 되겠지. 그게 아니면 가능성은 정말 희박하지만 저렇게 이쑤시개 더미가 되거나. 일주일에 두어 번 조깅하거나 방에서 덤벨 치는 거 정도로도 꽁으로 먹는 피지컬이 꽤 쏠쏠하긴 한데, 이것도 언제까지나 타고난 체질과 젊음이라는 버프에 무임승차해서 기댈 수는 없다. 벌써부터도 일이 바빠서 간신히 잠만 자는 시즌이거나 그냥 기분이 쒯이다 싶으면 한두 주씩 빼먹는 건 다반사다. 아주 가까운 5년, 10년의 미래에서도 금방 차이가 난다. 나는 그 5년, 10년 후의 가까운 미래에서부터도 내 여자로 하여금 눈을 뗄 필요가 없는 남자, 그리고 다른 여자들의 부러움을 내 여자가 즐겁게 소비할 수 있는 정도의 남자가 되고 싶다. 존나 섹시한 40대, 50대, 6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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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님의 프로필엔 아주 예전부터 이런게 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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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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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PT샵 사장에 꼭 맞게도 어울리는 메시지를 잘도 골랐네. 전화해서 제대로 쇠질(…)이랑 유산소 하는 방법, 코로나 풀리고 나면 근처에 괜찮은 샵을 고르는 방법 등을 물어야겠다. 굳이 이름 모를 헬창들을 스느스에서 눈팅하면서 온갖 잡지식을 셀프검증하느라 지치느니 어차피 마침 지인 중에 장사 잘하는 전문가가 있으니까 거기로 직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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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할 것인가, ‘역전’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