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요즘은 가끔 답답해서 출근하려고 갖은 핑계를 만드는 중이다. 제발 출근하게 해주세요. 집에 있으면 자꾸 먹고, 먹으니까 치우고, 그게 너무 귀찮아서. 그랬다가 막상 이틀 정도 출근하면, 피곤해서 그 뒤 이틀을 헤롱거린다. 점심 저녁에 밥 먹고 30분씩 누울 수도 없고, 기이하게도 남들이랑 비슷한 시간에 출퇴근하려고 하면 대중교통은 지옥이다. 어쩌라고. 어쩌라는 거야 진짜.
만년필 잉크가 하도 안나와서 좀 괴롭혔더니 오히려 터져버렸다. 그러고 족히 10일은 방치한 것 같다. 큰일이다. 펄펄 끓는 물에 넣으면 살아나 주려나. 굳은 잉크만 녹아서 싹 빠져주면 좋은데. 만년필을 제외한 볼펜 중에는 Bic펜을 좋아했는데, 이제 한국에서 철수한다고 안 나온다. 더 큰일이네.
화상 어쩌구가 전혀 쓸모없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라 남의 회사 사람이 하자고 할 땐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어차피 카메라에다가 아주 중-요한 걸 들이대고 보여줄 것도 아니고(그럴 거면 아예 데이터를 보내 주거나 워크쉐어 하면 되니까) 왜 굳이. 그날은 전날 저녁밥을 깜빡해서 안 먹고, 아침에 여유 있게 일어나니 시간이 애매해서 아점을 먹으려다가 제낀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난리가 나서 저녁 타임도 아슬아슬했는데 화상이라니. 어차피 다 아는 사람들이긴 해서 좀 먹으면서 한다고 하고 치떡을 시켰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러다 아사하것어요…
-아니 꼬박 하루를 안 먹고 여태 뭐했어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얼마 있다가 치떡이 왔다. 아직도, 무려 아직도 엘베 공사 중이라 옥상으로 라인을 넘어와서 16층까지 걸어 내려온 배달 아재가 참 고마웠다. 요청사항에 1층 로비 계단에 놓고 문자만 주면 내가 알아서 가지러 간다고 했는데. 배달 온 걸 큰 대접에 옮겨 담아서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어차피 지금은 내가 딱히 상관없는 얘기를 하고 있긴 한데. 조금 지나서 내가 매우 상관있는 얘기를 시작했다. 몇몇 이슈 때문에 리스케줄을 하겠다고. 아무리 봐도 일을 땡겨서 벌어 놓은 프로젝트 버퍼만큼을 딱 맞게 다 갖다 박는 것 같은데 이건 기분 탓이겠지. 그래, 뭐 이유도 있다니까. 일단 난 꼬박 하루를 굶다가 먹을 게 들어가니 넘모 행복해. 오키오키-. 대답도 잘해주면서 찹찹.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느새 사운드가 조용해졌다. 다섯 명이 조용히 나만 본다.
-…?...? 왜여
-ㅋㅋㅋㅋ 아니 너무 맛있게 먹어서 ㅋㅋ 계란, 라면, 오뎅, 떡을 어떻게 한 번에 걸어서 한입에 다 들어가는 거짘ㅋㅋㅋㅋ 하정우인 줄
-배고파서 그래요
-(다른 사람) 저건 떡볶이를 찍어서 먹는 게 아니라… ㄹㅇ 퍼서 마시고 있잖아 ㄷㄷ;
-내 덩치에 하루만 굶어봐. 그 소리 안 나올 걸. 나도 원래 이렇게 우왁스럽게 안 먹고 우아하게 먹는다고…
-(다른 사람) 우아가 아니라 우와; 아님?
-너님은 담에 출근 겹치면 두고 본다
-밥 먹을 때마다 카메라 켜주면 안 되나요, 아님 혹시 먹방 안해보실래여
-먹방 보는 것도 노잼이고 어색해서 싫어하는 편입니다
-되게 잘할거같은뎈ㅋㅋㅋㅋㅋㅋㅋㅋ
-남 먹는 걸 왜 봐 ㄷ;
-아니면 담에 밥 같이 먹어요
-그럼 그쪽이 사는 걸로
-ㅇㅋ
-ㅋㅋㅋㅋ 장난인데 사긴 뭘 사요, 내 멋대로 고르고 내가 살 겁니다
-그래요! 신나신나
-오… 근데 음식을 따로 그릇에 담아서 먹는 남자였어?
-그럼 음식을 그릇에 담지 어디 담아요ㅋㅋ
-대부분 설거지 귀찮아서 그냥 배달 온 그릇에 먹지 않나?
-아, 저도 거의 그렇긴 한데. 가끔 배달 자주 시켜먹다 보면 뭔가 끼니가 아니라 간식이나 장난감 먹는 거 같아서. 밥 먹는 기분 내려구.
-오오…
-별게다ㅋㅋ 그럼 끝난 거죠? 저 이제 캠 끄고 좀 더 정열적으로, 진심으로 먹게요
-아니 나도 보여죠ㅠ
-됐습니다ㄷ;
선생이나 선배의 말은 득이 된다는 전제하에 잘 듣는데, 그 외 노친들이나 부모들 말은 나도 잘 안 듣는다. 그래도 가-끔 생각나면 들었던 대로 해보긴 한다. 먹방을 보는 건 아닌데, 가끔 다른 이유로 영상을 봤다가 뭘 먹고 있는 스트리머들이 있었다. 본인이 가까이에서 실물을 보면서 먹으면 모르겠지만, 조금만 떨어뜨려 놓고 마주 보는 각에서 보면 그림이 뭔가 이상하다. 대부분 하얀 박스에 국물이나 소스가 여기저기 치덕치덕 묻는다. 굳이 먹던 중이 아니더라도 처음 그냥 까보면, 음… 뭔가 배달을 위한 케이스지, 그 자체가 식사용 용기는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요즘은 가끔 그릇에 덜어 먹는다.
어차피 설거지가 귀찮다고 배달 온 용기에 그대로 먹어봐야, 재활용을 바로 버릴 게 아니라면 결국은 그 용기도 닦아서 분리해놔야 한다. 설거지 한 번 하는 건 똑같다. 어차피 한번 할 거, 밥처럼 밥답게 먹자.
손수건 가지고 다니는 남자에 이어서 그릇에 덜어먹는 남자라는 소리를 듣다니. 뭐가 그리 특이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