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점점 길이 익숙해진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길인데. 점점 익숙해지는 코너, 익숙해지는 드문드문한 몇몇 건물, 익숙한 노선번호의 버스들. 그러다 익숙한 그 마지막 코너를 지나고, 전역한 지 만으로 9년, 햇수로 10년이 되어가는 내 마지막 근무 부대의 정문을 맞닥뜨렸다. <고막리 마을회관> 버스정류장 바로 맞은편. <청룡회관> 직전 역. 사실 정말 9년, 10년 만에 마주치는 건 아니다. 잦으면 연에 한 번, 못해도 2-3년에 한 번은 이 길로 지나갈 일이 생긴다. 강화에서 일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데를 들렀다 오거나, 오늘처럼 길이 막혀서 티맵이 경로를 틀어버리면 친절하게 지나친다. 그래도 가끔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나 싶으면서. 닫아놓은 위병소 문에 위장그물이 걸려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위병소에는 아직 고딩 티도 벗지 못한 스물한 살 이쪽저쪽의 애들이 서있다. 그 옆의 신호등 같은 표지판. ‘일단정지, 라이트 꺼, 통과’.
그렇게 지나치면서 담벼락과 그 위의 철조망들이 만리장성처럼 쭉 늘어선 게 보인다. 그 만리장성을 따라 나있는 길을 따라 가면서 그 담 너머 안을 상상한다. 그 안엔 그런 풍경, 그런 일상이 있었는데. 지금을 아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의 박제된 기억이라도 그 ‘안’을 아는 사람으로서 지나간다는 느낌. 이것도 신기하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담 너머가 되게 중요한 연병장이나 숙영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밖에서 그즈음을 지나가는 거기는 보급창고와 수송반의 차고, 끽해야 탄약고 정도 있다. 숙영지와 연병장은 위병소를 들어가자마자 꽤 앞단에 바로 있다. 연병장은 그 숙영지 바로 앞 한참 아래에 푹 꺼져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