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군생활은 후달일땐 흑화하기 전의 산체스처럼 애들을 조지지 않는다고 내가 ‘조짐 당했’다. 그래도 평소의 강도는 다행히 산체스가 당한 것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사무적이고 업무적으로 나눠진 조직이었다. 대단한 공명심이나 사명감은 없고, 그냥 내가 그런 구시대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인간적인 방식에 젖어든다는 기분이 더러웠다. 그래서 최소한 남한테는 똑같이 그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짬은 찼고, 이후엔 정해인의 두 번째 수사 콤비인 상병 선임처럼 위든 아래로든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했다. 물론 뒤집힌 낮밤, 밤샘근무, 야근 때문에 드라마의 그 역할처럼 그렇게 해맑게 개소리를 하면서 뒷구멍으로 잘 놀러 다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그러면서 착하고도 유능한 선임이고 싶었다. 물론 나 혼자 유능하게 되는 건 어차피 기존에 잘하던 걸 시킨 거니까 그닥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군생활 선임에게 기대되는 ‘유능’이라는 건 별 사고 없이 애들이 말 잘 듣게 하는 것도 포함이었다. 후자의 경우엔 쉽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정말 노력했지만,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인간들 중 두들겨 패고 참신한 욕설의 30콤보쯤을 때려 넣어야 말을 듣는 습성이라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내 손과 인격을 더럽히기 싫어서 때리지 않았고,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그 말 안 듣던 몇몇 애들은 안 때렸어도 알아서 할 일을 했다. 그냥 사람과 일에서 틀림이나 비겁함이 없이 사는 걸 직접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 실질적인 손해를 보는 건 너다’ 라는 걸 굳이 겪어보고 알 때까지 그 턴을 기다렸어야 하고. 그러다 언젠가 야근이 끝나고 간부한테 편지를 대필해주고 뇌물(…)로 받은 시바스 리갈을 까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우리 선임 똑똑하고 착한데, 자기들이 속 썩여서 죄송하다’는 뻘소리나 삐약삐약 하고 앉았고. 어으 진짜. 징글징글하게 귀여운 녀석들.
아마도 욕심이 너무 많았어서 아쉬움도, 미안함도 많이 남는다. 뭐그렇게 성인군자가 될 것도 아닌데, 그냥 남들처럼 잠깐 눈 딱 감고 몇 대 쥐어박고 쌍소리 좀 휘두르면서 호되게 몰아쳤으면 나도 편하고 일이 좀 쉬웠으려나. 근데 그럼 일은 쉬웠어도 편하진 않았을 듯. 나는 이미 완성된 착한 사람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냥 착하고 싶긴 했고. 그러니까 그냥 물렁한 인간이었다 쯤으로 하자. 물렁한데 욕심은 그득그득해서 그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