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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ness Bringer_04

Neon Fossel 2021. 9. 24. 18:14

그렇게 화도에 도착하면, 고모할머니는 그 길을 뚫고 온 자기 엄마와, 그 엄마를 데려다준 조그만 아빠를 펑펑 울면서 반겨줬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시골에선 갑자기 뭘 챙겨드리거나 대접할 게 없으니까, 마침 그 화도 집 근처에 있던 양계장에서 계란을 한 판씩 사다가 통째로 삶아주셨다고 했다. 지금도 시골에선 가끔 노친들이 혼례나 장례에 돈뿐만 아니라 국수나 계란을 들고 가는 경우가 있다. 혹은 마을회관에 과일과 더불어 꼭 국수를 한 박스씩 후원 삼아 넣어놓거나. 옛날엔 돈이 아니라 국수나 계란이 축의이자 부의였던 적이 있었다. 계란 10개 남짓을 지푸라기로 엮어서 축의나 부의로 들고 가곤 했었다고. 어차피 비싸게 벌어서 비싸게 쓰던 도시와는 다르게, 당시 시골에선 계란도 꽤나 고급 음식이었다. 그래서 고모할머니는 그렇게 대접을 했던 거다. 계란 한 판을 쪄도 어차피 증조할머니는 두세 개 드시는 게 다니까, 아빠 혼자 열개, 스무 개를 허겁지겁 먹었다고 한다.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음식이니까. 그럼 고모할머니는 아빠의 까까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리 일렬이 잘 먹네, 이쁘다야’ 하시면서 활짝 웃으셨다고.

그래서 내가 어릴때부터 지금까지도, 가끔 고모할머니 댁에 가면 본인 자식들이나 손자 손녀들보다 우리가 가면 더 기뻐하신다. 집이나 밭 어딘가에 계시다가도 한달음에 달려와서 활짝 웃으시면서 우리 일렬이가 왔구나!, 재윤이가 왔구나! 하시면서. 오죽하면 고모할머니네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장난으로 질투할 정도로. 그리고 우리가 어른한테 인사 가는 거니까 되는대로 이런저런 걸 잔뜩 싸들고 갔는데도, 돌아올 땐 그 갑절로 더 많이 챙겨서 보내주신다.

그래서 그랬나보다.

고모할머니한테 아빠는

보고 싶은 사람을 보게 해주는 사람
보면 반가운 일이 일어나는 사람
그래서 반가운 사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