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도로 가는 꼬부랑 길은 정말 가파르다. 이니셜D에 나오는 그 업힐/다운힐 레이스도 여기서 찍은 건가 싶을 정도로. 이러다 차가 뒤나 앞으로 쏟아지겠다 싶을 만큼 경사가 있고, 한 코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구불거리니 속도를 낼 수도 없다. 그래도 우리 크고 아름다운 머슴 1호는 힘좋게 잘 밀어붙이며 올라간다. 으이구! 내새끼! 그러다 앞에서 더더더더욱 느려지는 기차행렬이 시작됐다. 막힐 정도로 차가 있을 시간도 아니고, 차가 있지도 않은데. 길막의 주인공은 레이였다. 내가 저 맘 알지. 꽤 한참 전 여수에 놀러 갔을 때 빌렸던 레이도 저랬다. 어느 정도를 넘은 가파른 길에선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43킬로에서 고정. 차가 언덕에서 점점 흘러내린다는 느낌. 커엽네.
그렇게 한참을 고생하던 레이가 갈길을 가고, 다른 차들을 따라서 산길을 쭉 따라갔다. 앞차들을 보니 번호판이 다 ㅎ돌림이고 흰색이었다. 렌트카. 처음 와보는 남의 시골 + 밤길 + 편의점 비슷한 무언가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니 당연히 그 레이가 빠져도 그냥 느렸다. 나도 어디 놀러 갔을 땐 저랬는데. 저랬나? 하며 앞차들을 구경하면서 갔다. 어떤 구간은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무려 1km 안에 세 개나 들어와 있다. 이렇게 시골 구석구석까지 펜션이 많이도 들어와 있나 보구나. 그새 많이 바뀌었네. 그리고, 도착.
걔네 펜션이 있는 곳은 거의 펜션 단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 넓었다. 내가 거기까지 들고 가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나와서 들고 가라고는 더더욱 할수가 없으니 구체적으로 어디냐고 물었다. 숙소 앞에다 차를 대고, 박스랑 이런저런 봉투를 바리바리 들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H.
O.
L.
Y.
S#………
나머지 세 식구가 다 테이블에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자리에만 무려 삼계탕(…)도 있고, 테이블 전체에는 모듬회, 샐러드, 치즈, 과일도 있고. 아니 무슨 복날도 아닌데 몸보신을 이렇게들; 저거 설마, 설마.
차로 여러번 왔다 갔다 하면 틈을 줄까 봐 한방에 완전군장처럼 싸서 들고 왔다. 도시의 표준 어머니, 표준 아버지처럼 생긴 분들이 계셨다. 업무용 밝음과 시골청년의 순박함 그 사이쯤으로 모드를 조정해서 인사를 드렸다. 그 무거운걸 한 번에 다 들고 오다니 힘이 좋다, 듬직하다 등등 집에 일 잘하는 소를 보듯 반겨주셨다. 내려놓고 이건 미리 반건조해놓은 거니까 바로 드셔도 된다, 서늘한 음지에서 상온 보관하시면 된다, 저기 채소랑 과일들은 어지간하면 냉장보관하시는 게 좋다 등등을 말씀드리고 나오려는 찰나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식사는 하구 가야지요
-아, 저녁 먹고 왔습니다. 시골집에 일이 많았어서 다시 가봐야 될 것 같아요
-그래도 그냥 보내면 우리가 너무 섭섭하지. 잠깐이라도 앉았다가 가요
-아… 네 그럼 ㅠ;
사실상 너무 뻔한 매크로라서 과정 자체가 생략되어도 무방할 턴이 지나고, 그렇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역시나 안주가 아닌 뭔가 식사같은 것들이 잔뜩 차려진 자리는 내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