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은 어디서 했어?
(이아저씨가 혼자 술 좀 들어가더니 말을 까네…)
-여기 강 건너 김포 좌우전방에서 했습니다
-아빠아빠 오빠 해병대 나왔다고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해병대
-아아아^ 해병대ㅐ? 어이구 해병대! 충성!
-어이쿠… 아닙니다. 요즘 군대 다 물러서 그냥저냥 ㅎㅎ…
-어쩐지 아까부터 봤는데 직업이랑 다르게 몸이 짱짱한거이 운동한거 같더라고. 이게 남자는 군대를 아주그냥 빡센데를 갔다와야 돼 빡센데를. 나는 방위 나왔지만서도
-ㅋㅋㅋㅋ 방위래 아빠 조용히해 오빠한테 혼나
-에이, 그래도 어디든 옛날 군대가 요즘보다 훨씬 힘들지. 아버님이 훨씬 더 고생하셨을거야
-그럼 그럼! 옛날엔 증말루 선임들 심심하면 맨날천날 연병장 뺑이돌구 뚜들겨 맞구 그랬어어
-ㅎㅎ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죄송한데 저 이제 슬슬 가봐야 겠네요
-벌써 가게? 한두시간 더 있다가 가지
-지금도 아홉시라 ㅎㅎ ㅠ 다음에 기회 되면 술한잔 대접할게요
-나도나도! 나도 같이!
-그래ㅎ (어금니꽉)
대강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도착하면 전화해 - 응(아니). 예상보다 체류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어디야 - 출발, 왜 벌써와(?) - 그럼 가야지 안 갑니까, 안 오길래 자고 오는줄 알았지 ㅋㅋㅋㅋ(대충 너도 개고생해봐라 쌤통이다 라는 의미의 킬킬거림, 우리 부자의 우정은 이렇게 상대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훈훈한 수준이다) - 왜 자고와 진짜, 어쨌든 출발해요.
원래는 나온 김에 해안도로변에 큰아빠, 육촌동생, 아빠, 나 넷이서 낚시를 가던 곳으로 가서 차를 세워놓고 밤바다를 보려고 했다. 그 계획은 상콤하게 망했지만 그때 들으려던 노래들을 틀고, 창문을 내리고, 천천히 갔다. 가는 동안 또 언덕에서 흘러내리는 레이를 두 대쯤 마주치고, 저 렌트카들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설익은 젊음과 설렘으로 꽁냥두근거릴까 상상하면서.
크고 아름다운 머슴 1호와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자기가 챙겨준 물건들이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약 네 번쯤 물었고, 나는 사람이 최소한 옷을 갈아입고 나서 대사를 칠 시간을 줘야되는거 아니냐고 맞받아쳤다. 그리고나서 약간의 양념을 쳐서 매우 맛있어하시더라고 매우 싱거운 대답을 전달했다. 할머니는 내가 낸 색칠공부 숙제를 잘 해놓고 드라마를 틀어놓은 채로 잠드셨다. 역시나 소화는 단 1도 되지 않는다. 대충 냉장고를 뒤져서 사이다를 풀컵 들이키고 별을 보러 마당 잔디로 나왔다. 달이 크군. 운전중이라 자동으로 방해금지였던 폰을 꺼내봤다. 어우… 카톡 미리보기가 무려 열 세개째 접혔다가 펴진다. ‘아빠랑 말동무 해줘서 좋다, 와줘서 좋다, 잘 먹어서 좋다, 혹시 기분 안 좋은 거냐, 잘 도착한 거냐, 자기가 멋대로 해서 화난 거냐, 아니면 그냥 잠든 건가’ 등등. 정작 나는 그냥 운전하고 와서 옷 갈아입고 나왔을 뿐인데, 저쪽 세계에서는 꽤나 여러개를 한 인간이 되어 있다. 언젠가, 어디선가 봤던 내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까의 괘씸함대로라면 아주 가루가 되도록 쏘아붙이려다가 괜히 짠해졌다.
-좀 천천히 왔어. 좀 전에 도착
-그럼 도착하자마자 도착했다고 톡이나 전화를 했어야지!!!!
-천천히 왔고, 그래서 지금 연락하잖아
-알았오….ㅠㅠ 근데 화났어?
-가서 비싼 밥 얻어먹고 화가 왜 나
-아무리 봐도 화난 거 같은데
-왜 화가 안 난 사람한테 화를 내라고 하는 거지 ㅋㅋ
-아니 그냥 맞을 매를 안 맞고 있는 거 같아서 무셥다그.....ㅠㅠ
-어흥! 됐지, 자라
-아니 안잘건데에 잠깐만 뭐해?
-너랑 톡
-아니 그거 말고 쫌 ;
-마당에서 멍때리기. 넌 뭐해?
-아빠는 자러 들어가서 엄마랑 동생이랑 이불 깔고 딩굴딩굴~
-아까 닭고기 장갑끼고 발랐다며. 손 안 데었어?
-걱정해주는거야?
-어
-ㅎㅎ…ㅎㅎㅎㅎㅎㅎ@!!!@!!!!
-그거 위험해. 너처럼 손 연한 요즘 애들은 다 데인다. 손에 굳은살 많고 솥뚜껑 같은 나같은 사람이나 그런 거 하는거야
-내가 애도 아니고, 어?!
-니가 애지 그럼. 그리고 나 여자한테 살 발라달라고 할만큼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캐릭 아님. 그런 거 하지마. 미안하잖아
-내맘이거든? 흥! 왜 해줘도 뭐라해? 차암나
-; 그러는 너는 왜 화를 안 내도 뭐라해 ㅡ.ㅡ 화를 내도 뭐라고 하고 ㅋㅋ 노답
-아 몰라 내맘대로 할거야
-그럼 나도 내맘대로 잔다. 가족여행 왔으면 남이랑 떠들지 말고 엄마랑 동생이랑 떠들어
-지금 엄마랑 동생이랑 어차피 오빠얘기해 ㅋㅋㅋㅋㅋㅋ
-….. 제발; 뭐라셔
-동생이 오빠한테 이상한 혼종(?) 느낌이래ㅋㅋㅋㅋ
-내가 좀 끔찍한 혼종이긴 하지
-아니 ㅋㅋ 하는 일이나 하고다니는 거 보면 되게 도시 사람 같은데, 막 키랑 어깨랑 팔뚝도 엄청 크고 시골사람 같기도 하고 ㅋㅋㅋㅋ
-그게 정체임 ㅋㅋ 정확하네
-엄마는 오빠 엄청 맘에든대
-는 되게 감사하네 ㄷㄷ, 는 근데 맘에 들고 말고 할 문제가 뭐가있음
-말 진짜 그렇게 할거야?
-ㅡ.ㅡ… 모기문다. 나 자러 들어감
-주거써 진짜
-너 자꾸 내 얘기 주작하지마 진짜
-뭐가주작인데 뭐가주작인데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