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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lvl._02

Neon Fossel 2021. 10. 4. 00:45

내가 2-3학년일 때를 떠올려봤다. 그나마 얼굴 아는 선배들이라고 쫓아가서 붙어있어 봐야, 자기들끼리 훌쩍 사라지거나, 아니면 더 고학번 선배한테 콜 받으면 우리를 다 내박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누구한테 가서 상호작용을 해야, 언제까지 있어야 NPC 호감도 퀘스트의 완료 조건이 달성되는 건지 애매했고. 오늘의 이 10렙따리도 그렇겠지. 그래도 나보다 네 살 어린 12학번들이랑은 안면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이놈의 12학번들은 오랜만에 만난 우리한테 기어오르고 떠들면서 노느라고 정작 유일한 재학생(…)에겐 관심이 없다. 홀 앞에서 버려지고, 밥 먹으러 오갈 때 버려지고, 나와서 퇴장이랑 사진 찍는 데서 또 버려지고. 끝나고 삼삼오오 모일 때 또 집에 바로 가도 되나, 끼고 싶으면 껴도 되나, 어딜 가서 얼마나 있을 건지 알려주지도 않고 교통정리도 안된 채로 버려질 거고. 뻔했다.

그래서 12학번 중에 두어놈 정도를 조용히 찍어서 붙였다. 쟤 데리고 같이 가서 밥 먹이고 와. 좀이따 퇴장하고 얼굴도장 찍을 때 데리고 와서 신랑 인사시키고. 사진 찍을 때 챙기고. 끝나고 코시국이니까 커피 한잔씩 들고 공원에서 간단히 떠들다 갈 거 같으니 그거 물어보고 챙기고. 다행히 평소에도 나와 친하고 말 잘 듣는 애들이라 잘 챙겨줬다. 그렇게까지 뭐가 짠해 보여서 그런 건 아닌데. 마침 전날 선후배 몇 명이랑 했던 얘기 때문인가.

내 위로 한 학번, 아래로 두 학번까지가 학회 활동 복귀, 그냥 군대 갔다가 복학, 뒤늦은 가입 등으로 이상하게 3-4학년 사이에 몰려있던 때가 있었다. 정말로 연구라는 걸 해보자는, 취미도 공부인 이상한 집단이었다. 그래서 다른 동아리와 다르게 3-4학년의 활동참여가 중요하고, 졸업생도 마찬가지고. 근데 여기도 결국 3-4학년 때부터 제살길 찾느라 바빠지는 건 피할 수가 없었기에 그정도 학년의 회원이라는 건 꽤나 귀한 자원이었다. 그런 중-고학번인 우리가 하필 활동 시기가 겹쳐서 드글드글 할 때였다. 우리한텐 스포츠였다. 남아도는 힘이랑 심심한 머리를 굴려볼 경기장. 해리포터에서 기숙사끼리 경쟁하듯 정말 살벌하게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당연히 너 죽고 나살자 식으로 첫 슬라이드나 첫 페이지의 첫 문장부터 제일 마지막까지 모두 꼬투리 잡힐 걸 예상했다. 그래서 토론이나 발표에서 연구성과 등을 먼저 제시할 땐 최선의 방어를, 듣는 입장에선 조금의 빈틈에도 최대한의 공격을 일삼는 전쟁터 그 자체였다.

신입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게임으로 치면 ‘맞으면서 배우는 거야’ 수준으로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봐주는 건 없었다. 대충 조별로 고학번이나 OB 멘토 하나씩 붙여 줬으면 이미 끝난 거다. 어리고 경험이 없다고 뒤집어 쓰고 있던 까방 쉴드, 핑계는 말끔히 무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