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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lvl._04

Neon Fossel 2021. 10. 4. 03:08

그런 분위기는 내가 처음 왔을 때 이미 있었고 당연했다. 다만 우리가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그런 풍조가 더 거세지고, 팩트체크나 논리적 점핑을 파고드는 예리함은 더 날카롭고 자비가 없어졌다. 선배들 대부분과 중간 허리쯤이었던 우리 스스로는 그렇게 하드코어한 푸시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푸시를 주든 받든.

단순히 스트레스를 견디는 맷집을 늘리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지식과 판단 근거들을 더 넓고 깊게, 그리고 꼼꼼하게 다룰 수 있게끔 똑똑해진다는 느낌이 좋았다. 서로 적당히 챌린징한 상대가 되어줄 만한 좋은 스파링 파트너 같은 느낌. 하다하다 승부도, 답도 안 나면 일단 하던 컨퍼런스는 마저 쫑치고 뒤풀이 가서 소주잔 박아 놓고 2차전을 하면 되었다. 어차피 아직 해 뜰려면 시간 많이 남았어, 덤벼. 그래서 꼭 이겨먹으려고 정신을 하도 바짝 차리고 있으니 술이 취하지도 못했다. 젊었네 진짜.

다만 그런 방식의 아쉬운 면도 있었다. 아무리 기본적인 존중과 매너, 격식을 지키면서 한다고 해도, 자신이 시간과 자원, 노력과 애정을 쏟은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집중포화 당한다는 건 상당히 가혹하고 속상한 일이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내 시간과 자원, 노력과 애정의 총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결과물은 나를 구성하는 어떤 조각이기도 하고. 그런 나의 일부 혹은 상당히 큰 부분, 어쩌면 나의 전체가 한정된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시험당하고 부정당하는 거니까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애초에 모든 구성원이 그런 걸 감내할 만큼 강단이 있을 리 만무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 들어오는 어린 친구들은 점점 그런 분위기에 주눅만 들뿐 그걸 깨부수고 극복하거나 타고 놀지 못하는 케이스가 왕왕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