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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lvl._05

Neon Fossel 2021. 10. 4. 03:09

게다가 사람은 어릴수록 대개 순진하지만, 그래서 그 순진무구함이 굉장히 선명하게 잔인하기도 하다. 어른보다 대학생이, 대학생보다 교복쟁이들이, 교복쟁이보다 잼민이들이 어떨 땐 더 원색적이고 가감 없이 잔인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이유. 우리도 그랬다고 느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까지는 지식의 교류와 검증, 토론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콜로세움에다 검투사를 집어넣어놓고 잔인한 축제를 즐기듯. 그렇게 까는 것 자체에 열띤 흥분이 고조되며 변질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저학번을 먹잇감으로 놓고 고학번이 자기의 우월감을 충족하려는 쇼나 유희의 일환으로 그 수단을 쓸 때, 가장 치사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잘난 척하는 네가, 앞에 서서 이 수모를 당하는 저 저학번이랑 네 고학번을 정확히 숫자만 스위치 했을 때, 룰 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그런 서슬 퍼런 소리를 정말 똑같이 할 수 있나 보자. 니가 1학년이고 쟤가 4학년으로 바뀌었어도 지금 니가 말하는 그따위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명목상 학번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질답이 가능하다는 허울뿐인 구실로 당위성을 확보하고, 실제로는 암묵적이고 실질적인 위계와 권위를 발동해서 자기보다 약한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비겁한 짓. 그래서 너 같은 인간들이 회사 가서 짬만 먹다가 뭣도 모르고 면접관으로 나오니까 우리나라 100대 기업들의 면접 퀄이 그 모양이겠지. 치사하게 약자한테라도 강자인 척을 해보지 않으면, 평생 강자한테 강해보지도 못할 종자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가장 파렴치하고도 비겁한 단계의 인간이다.

이런 점들은 하드코어한 푸시가 주는 여러 장점에 따라오는 치명적인 대가였다. 인간이 가진 절반의 특성인 동물적인 관성에서 오는 그런 오염들은 세심하고 정교하게 구분하고, 때로는 각자 혹은 누군가가 엄격하고 품위 있게 컨트롤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때의 우리는 너무 서툴고 투박했다. 철없이 각자가 똑똑해지는 줄 알고 신났을지는 몰라도, 충분히 지혜롭지는 못했던 것이다. 스스로와 주변에게 ‘그냥 어려서 그랬다’는 면죄부를 절대 주고 싶지 않은 대목이다. 그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내 이전의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이 풍경은 대학 이후의 여러 상황에서도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직업에서도 위아래 혹은 선후임의 문제에서 자주 보인다. 또는 사회적으로 공분을 사는 어떤 사건이나 대상이 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응징하려는 대중들에게서 보인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관성적으로 그 잔인함에 가속이 붙고, 예리한 판단과 분별로 시작했던 담론은 그렇게 쉽고 빠르게 오염되는 것. 게임회사의 일개 직원들까지도 굳이 그렇게까지 욕을 먹고, 스스로의 직업적 자존감이 떨어져야 하나. 평균적으로 결재라인 맨 뒤에서부터 세 번째까지만 씨게 욕먹고 정신 차렸어도 애초에 이 사단이 나지 않았을 것을. 그래서 그 일개 직원들이 밤을 밤처럼 까먹으면서 만들었던 그 모든 게 정말 백이면 백 다 싸잡아서 잘못이었고 구렸다고 할 수 있나. 예쁘게 열심히 애지중지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