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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자를 때가 되었다

Neon Fossel 2021. 10. 27. 15:48

-한스!
-응?

-오늘 머리 또 소닉이넼ㅋㅋㅋㅋ
-아ㅏㅏㅏ, 머야; 이거 왜이래, 왜이러징;

-근데 그거 소닉각일때 계-속 내버려 두면 웨이브가 한 번 더 꼬여서 내려가는 거야?
-어… 그렇더라고

회사 사람들이 내 머리의 특수모드에 붙여준 별명. 소닉. 날이 습할 때,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에 자꾸 손을 댔을 때, 혹은 안 씻고 밤을 새워서 기름질 때(…) 나오는 모드다. 원래 각도랑 방향은 3차원으로 지멋대로지만 두 번쯤은 웨이브가 항상 먹어있다. 근데 이제 거기서 마지막 마감이 전체 가르마나 머릿결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탁! 치켜 올라가는 커브가 또 생길 때가 있다. 세 번째 커브. 왼쪽 옆머리 끝, 윗머리 끝에 두세 군데가 탁! 탁! 치고 올라간다. 앞에서 봐도 소닉 같고, 특히 그림자로 보면 정말 소닉 같단다.

저번 턴엔 살면서 정말 드물게 안 가던 미용실에 갔다. 머리가 길어도 너무 긴 것 같은데 도저히 자르러 갈 시간이 없었다. 거의 평생을 다니는 미용실은 집 근처이긴 하지만, 매번 주말에 나올 일 있을 때 미리 들러서 자르고 간다는 계획은 항상 게으름 때문에 약속시간도 간신히 맞춰 나가다 보면 망하기 일쑤였다. 나온 김에 아예 자르고 들어갈 생각으로 칼을 뽑았다. 와 요즘엔 머리 정말 비싸게 자르는구나. 뭔 컷만 하는데도 돈 삼만원이지; 굉장하네. 요즘 이런 미용실은 다 예약제라고 하길래 팔자에도 없는 앱 예약을 하니 미용사가 아예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온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 여러 말보다 그냥 몇 달 된 사진을 보여줬다. 이때처럼요 + 뒷머리랑 귀 옆머리는 너무 길게 놔두면 자주 잘라야 하니 귀찮아서… 깔끔하게 잘라주시긴 하되 아저씨나 급식처럼 확 올려치진 마시구요. 그랬더니 갑자기 앞에 무슨 약식 테이블 비슷한 장구류(…)를 씌워줬다. 정체가 뭔지 워낙 궁금한 표정을 지었는지, 설명을 해준다. 요즘은 다들 핸드폰 하고 그러니까 머리카락이 폰이나 앞지락에 떨어지지 않고 편하게 폰 쓰라고 만들어주는 거란다. 세상에나. 폰 안 써요. 머리 자를 때만이라도 눈이랑 머리 좀 쉬게요. 이거 안 해주셔도 돼요.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다가 미용사가 말한다. 염색이랑 볼륨 펌 한건 아직 괜찮으시니 다음에 하셔도 되겠어요. 네? 어… 저 아무것도 안 한 건데. 아, 이게 원래 곱슬이신 거예요? 이야… 머리도 거의 갈색이신데, 이거 염색이랑 펌 이렇게 하려면 못해도 세 달에 한번? 십오만 원은 들어요. 1년에 60만 원씩 아끼는 분이네.

타고난 것 중에 그닥 쓸모 있는 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살았다. 근데 연간 60만 원 할인쿠폰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태어났다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머리를 보면 다들 비슷하게 하는 말이니까 완전 없는 말로만 립서비스를 당한 것 같지도 않고. 근데 그럼 60만 원쯤 다른 데다 써도 되지 않을까…? 멈춰!…

소닉 현상이 심해진다. 어차피 날도 추워지니 김동률처럼 아예 코트에 어울릴 장발로 길러볼까 싶지만, 나는 김동률이 아니다. 자기객관화ON. 남자 머리 치고 많이 길다 싶을 정도로(그래도 단발 같은 정도는 말고) 적당한 장발로 길러보면 웨이브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긴 하다. 나중에 길러봐야지. 조만간 머리에 올라앉은 소닉에 제초작업을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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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