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이었던 어떤 오후. 잠시 한가하니 쉴겸해서 이번주 주간퀘는 뭔지, 엊그제 깨놓은 퀘스트의 보상은 들어왔는지만 살짝 확인하려고 워프레임을 켰다. 그러자 수락할지 말지, 사용할지 말지도 결정할 수 없게 ‘숙련도 부스터 1일’이 일일 접속 보상으로 툭 하고 던져지더니 지멋대로 켜졌다(?). 무기나 워프레임(수트)이 먹는 숙련도가 평소의 2배가 되는, 다른 일반적인 RPG에서의 ‘경험치 부스터’와 비슷한 것이다.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머리가 바쁘게 팽팽 돌기 시작했다. 일을 하더라도 크게 컨트롤이 필요하지 않을 파밍 컨텐츠는 뭐가 있을까. 24시간동안 최대한 많이 부스터빨의 효율을 뽑아먹으려면 어떻게 해야되나. 일단 지금부터 끄지는 못한다. 껐다 켠다고 부스터가 없어지진 않지만, 저 부스터가 있는 동안 안 쓴다는 건 그만큼 매 분, 매 초 손해라는 얘기니까.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쯤 생각했을 때, 갑자기 스스로를 메타적으로 내려다보듯, 그 광경과 나를 이렇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원래 지금 이걸 하려고 했었나?'
'아니다'
'이건 누가 하라는 건가, 누가 이걸 하길 원하는 건가?'
'이 게임이 나에게, 혹은 이 게임사가 나에게'
'나는 그럼 이 게임이나 게임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그럴수도, 아닐 수도 있음. 다만 꼭 그래야하는 것은 아님'
그런 생각이 들자, 원래 확인하려던 것만 확인하고 게임을 당장 끄고 싶었다. 그러려는 찰나 클랜원들이 부스터가 떴으니 랭작(무기나 워프레임의 랭크 = 숙련도 레벨을 올려서 그 결과 계정 전체 레벨을 올리는 것)달리러 서둘러 가자고 호들갑이다. 싫다고 했다. 지금은 별로 안 내켜서. 클랜원들은 잠시 벙찌더니, '아ㅎ 그냥 부스터 떠서 지금 올리면 좋으니까 여쭤봤어요 ㅎㅎ;'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껐다. 최근 몇 년간 게임을 새로운 취미로 두면서, 서로 다른 게임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수없이 비슷하게 겪은 경험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위험한 순간으로부터 천만다행으로 간신히 한 발 벗어난 느낌이다. 혹은 나에게 뭔가를 '하게'한다는, '내 의지와 별개의, 확실한 의지'가 있다는 게 그냥 기분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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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