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냐? 안 바쁘면 먼저 만나도 되고
어차피 두어시간 뒤면 다른 애들이랑 다같이 만날 거면서 굳이. 혹은 어차피 얘랑 나는 평소에 따로 보기도 하지만 굳이. 이럴땐 뭔가 할얘기가 있다는 소리다. 일반적인 의미의 그 ‘할얘기’ 말고, 뻘소리=공상=고민=쏟아낼 것이 있다는 말인가 보다. 뇌놀음을 하자는 말이군. 나중에 합류할 녀석들은 그런 얘기에 대한 스키마가 없거나, 알긴 알아도 관심이 없는 애라서.
-ㄴㄴ 안바쁨. 근처 카페에서 보면 될듯 ㄱㄱ
어차피 한 달 남짓만에 보는 거지만 이제 그냥 인사가 되어버린 말.
-잘 사냐?
-ㅇㅇ 이제 다시 잠은 좀 잘 수 있음. 너야말로 잘 사냐
-나는 뭐… 일주일에 재판 두 개 이럴때 아니면 살만하지.
-근데 너 비례대표 받을거냐?
-뭔소리야ㅋㅋ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때쯤에 굳이 연봉 뻥 차버리고 공익사건 맡는 펌으로 간 게, 역대 어떤 대통령들이랑 비슷하길래…
-ㅋㅋㅋㅋㅋ나는 그런 큰 그릇이 못 돼요
-ㅋㅋㅋㅋㅋㅋㅋ 난 또 저번처럼 조국 집앞에서 살짝 티비에 나오는 거 말고, 내 친구가 티비에 더-오래 나오려나보다 했지
-어쭙잖게 들이댔다가 안철수처럼 된다. 그러고 어리버리 타다가 돈통 털리면 그냥 집안 말아먹고 아무것도 안 남는거여
-그러취
-그래도 여기가 공익사건 맡는 펌 중에서는 제일 잘 주는데다. 물론 관심사와 라이프를 포기하고 원래 있던데 있었으면 두 배는 더 받겠지만…ㅋㅋㅋㅋ
-훌륭하군
-그래서 문제지. 커리어가 이미 끝을 봐버린 느낌이거든. 원래 하던대로 형사쪽으로 돌아가자니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쉽지만은 않고
-원래 짬이 애매하게 차면 그런 것 같어. 한 번 잘 옮기면 몸값도 훅 뛰지만, 그만큼 거동이 무거워서 쉽게 폴짝폴짝 옮길 수는 없고. 옮기는 당사자든 받는 펌이든 둘다 사이즈가 커서 재고 따질 게 많으니까
-그러게. 근데 또 이제 딸린 식솔들이 생길거라 생각하면 먹고 사는 걱정도 해야하니. 다시 돈이랑 좀 가까워질 궁리를 해야되기도 하고. 영끌을 하면 언젠간 그 끌어모은 영혼을 갚아야 될 거 아냐 ㅋㅋㅋㅋ 알다시피 우리집은 부모나 나나 도시에서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이라, 여기에 발붙이고 사는 한 이런 걱정을 평생 하고 사는 숙명이지. 이래저래 다음을 생각해보고 있긴 한데, 한동안 여기 있으면서 커리어가 워낙 특수해진 터라 범용성이 별로 없어
-그게 좀 갑갑하긴 할듯. 그래도 때만 잘 맞으면 어차피 오라는 데가 많아서 문제지 없는 게 아니잖어. 안테나를 예민하게 잘 세우고 있어봐봐
-그래야지. 너도 일 작작해라. 그러다 뼈 녹는다
-작년쯤엔 거꾸로 내가 그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ㅋㅋㅋㅋ 난 요즘 Damage Limitation 쪽에 초점을 맞추는 중… 여유를 더 만들거나 관리를 더 잘하는 건 목표가 너무 높고. 한동안은 최대한 몸이랑 멘탈을 덜 깎아먹는 쪽으로 살아야지. 신인류의 3D업종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여
-ㅋㅋㅋㅋㅋㅋ 뭐 마실래
-내가 사려고 했는데
-나 사이렌 있음
-스벅빠였어?
-ㅇ
-모르던 사이 언제…
-스벅 입장 필수템은 오히려 니가 쓰는 거 아니냐
-그게 뭐임
-맥
-ㅁㅊㅋㅋㅋㅋㅋㅋㅋ 스벅이면… 나는 돌체 라떼 톨. 날 추워지니까 뜨끈하고 달달한게 좋더라. 잠깐이지만 머리 쓰려면 당분도 좀 넣어줘야 되고…
-먹는 게 무슨 연료냐
-연료지 그럼
-공돌이 다됐네. 돋네 ㄹㅇ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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