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대화체가 필요한 곳은 대화체로 재구성하는 형식을 취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론 대화와 인용의 합에 구애받지 않는 나열을 원칙으로 한다. 그냥 막 뭉쳐서 쓴다는 얘기…인데 이유는 있다. 이걸 대화체로 재구성하는 건 사실상 거의 책을 쓰는 것과 다름없게 번거롭고도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럴 여유와 실력이 아직 충분치 않음을 최근 여러 번 느꼈으므로 타협한다(…). 웰메이드의 퀄을 찍어내려다 스스로의 허들에 넘어져서 아예 안 쓰는 것보다야, 아쉽더라도 써 놓으면 나중에 고쳐 쓰거나 뽑아 쓸 수라도 있겠지.
앉자마자 냅다 F1 얘기부터 시작했다. 저번에 이놈이 여의도 애플스토어에 입장 예약이 빡세다는 얘기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피차 테크 얘기만 잔뜩 하다가 F1 썰은 하나도 공유를 못 해서 역시나 피차 아쉬워했었거든.
메르세데스와 레드불은 사실 어떻게 보면 올 한해동안 서로 종이접기 싸움(…)을 내내 하고 있는 것 같다. 너네 리어윙에 개수작 부렸지! / 그렇게 치면 너네 프론트윙은 아주 나풀나풀 벌벌 거리는 게 수상해…!! (??? 지나가던 페라리 : 우린 최신 하이-테크 종이접기에 관심 없다거… 차는 자고로 엔진빨 / 직빨이지! = 응 그래서 1-2등과 엄청난 격차로 근 30년째 3등따리 ㅅㄱ; 그나마 엔진이라도 잘 만들고 저런 소리 하면 웃기지라도 않지…) 저저번 상파울루 그랑프리 때도 결국 그런 싸움이었다.
레드불 : 선생님! 쟤네 메르세데스 리어윙이 규정보다 더 변신해요!
선생님 : ㅇㅋ 해밀턴 너 예선 출발 꼴찌로 가.
메르 : …? 아니 이런 ㅆ…;
선생님 : 근데 레드불 너네… 메르세데스 리어윙이 더 많이 움직이는 건 ‘어떻게’ 알았지…?
레드불 : 어엇… 그건… 그건… 헿;
(어떤 팬의 영상 제보)
선생님 : 레드불 드라이버 막스가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남의 차를 ‘손으로’ 만졌구나? ㅎ
레드불 : 아니 선생님 들어보세요, 그게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여태 70년 동안 그랬자나여
선생님 : 그럼 ‘여태까진’ 넘어가 줬으니까, ‘이번부터’ 벌금 7천만 원이야. 이후로는 누구든 남의 차 건드리면 7천 정도로 안 끝나…? 실격 때려버릴 테니까 각오하셈
레드불은 그렇게 7천만 원을 쓰고 메르세데스의 해밀턴을 예선 꼴찌 출발로 보내버리는 데에 성공했다. 사실 돈 7천 쓰고 챔피언쉽 경쟁의 격차를 더더욱 벌려서 라이벌을 지하 구덩이로 떨어뜨리는 거면 싸게 먹힌 셈. 챔피언이냐 아니냐, 1위냐 2위냐에 따라서 직/간접적으로 벌리는 돈의 액수는 수백억 차이가 나니까. 남는 장사지.
물.론.
그렇게 해밀턴이 꼴찌에서 예선을 출발한 채 그 근처에 붙잡혀 있다가 본선 레이스에서도 잘해야 5등 안팎으로만 기웃거리다가 나가떨어졌어야 정상이긴 하나… 모든 일이 레드불 입장에서의 그 행복한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짧은 버전의 미니레이스인 예선을 꼴찌인 20위로 출발했는데, 24 랩만에 15단계를 추월해서 5위로 들어왔다. 공식 영미 해설에 따르면 F1 역사에 [확실히 전례가 없는] 순간이었다. 팀 하나가 차 두 대를 굴리는 데에 1년에만 4천5백 억을 쓰는 건 쟤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경쟁자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대단하다. 이런 비슷한 순간에 흔히들 만화 사이버 포뮬러의 주인공 카자미 하야토, 제로의 영역, 부스터, 아스라다, 더러운 선풍기(…) 등등을 사용해서 표현을 하는데,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 그렇게 예선을 5위로 들어오고, 엔진 교체 페널티로 5 그리드를 강등당해서 본선은 10위로 출발. 여기부턴 쉽게 썰자가 잘 안 되는 순위다. 나도, 다른 사람들도 ‘많이 올라와 봐야 3등…?’까지만 예상했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7위까지 올라오더니, 결국 우승을(…). 새로 바꾼 엔진은 좀 말이 안 됐다. 무조건 내가 응원하는 팀과 선수가 잘한다고 좋은 느낌이라기보다, 저게 가능한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다른 팀들도 수백억-수천억씩 차와 선수에 돈이 발려있고, 저 차들도 아무리 상대적으로는 구리다, 똥차다 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F1이다. 다른 어떤 클래스의 차들보다 기술적으로는 40년쯤 앞선 차들이라고. 근데 그걸 저렇게 어머니들 마트 갈 때 타는 차들 제치듯 저렇게 제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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