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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ld never be me_09

Neon Fossel 2021. 12. 4. 22:39

물론 저 어려운 확률도 어차피 대상이 문명 단위라서 단위 자체는 꽤 크다. 하지만 저 무시무시한 확률보다 더욱 터무니없게 낮은 확률로, 정말 외계인 같은, 그런 딱 한 명의 외계인을 외계인이라 부르며 만났던 기억이 잠깐 스쳤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이 존재할 확률 x 서로가 의도를 가질 각각의 독립확률 x 의도가 있더라도 계기가 있을 확률 x 그 계기에 의해 의도를 실현할 확률

확률에 의한 뽑기를 기대하는, 기대했던 사고방식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좀 무력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건 아니다, 뽑기를 기다린 게 아니라 만든 거다. 그래서 언젠가 곱씹었던 어떤 글귀가 떠올랐다.

이제 더이상
우연한 방식의 이야기는 없다.

출처가 어디였는지도 잊은 터라 읽었던 책들을 뒤져봤다. 아마 종이책을 뒤져야 했으면 며칠을 질질 끌다가 포기했거나 잊혔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읽은 책은 거의 모두 전자책이었으므로 키워드로 검색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게 뭐라고 그렇게 다급했다. 그게 그냥 허상이었다고, 꿈이었다고, 그래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으면 어떡하지. 다행히 책 두 권 중에 하나라는 건 기억했어서 많이 헤매지 않았다. 있었다.

윤성택 시인의 <감에 관한 사담들> 시집에 수록된 ‘여행’이라는 시였다. 내 머리 속에는 ‘더이상 우연은 없다’라는 다소 압축된 형태의 울림 혹은 자국으로 남은 시다. 언젠가 손으로는 아니고 타이핑으로 필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울림도 한 가지는 아니었지만 지난 지금의 울림은 또 다른 색이 추가된다.

“어쩜 그렇게 딱 그 때에, 하필 그런 계기로 이렇게 만나게 됐을까(하뚜)” -> 에 대한, 그 모든 게 다 운과 우연은 아니었고, 사실은 엄청난 노력과 설계와 머리굴림의 산물이었다는. 그런 뒤늦고도 짖궂은 고백과 폭로. 혹은 폭로에 대한 약간의 귀여운 배신감이 점철된 그 간질간질한 광경 자체.

또는

이제 더이상 그런 우연이라는 포장이나 변명이 필요없어서, 대놓고 그럴 자유가 있다는 행복감. 이젠 대놓고 잘해주고 좋아해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

한편으로는

이젠 그렇게
우연이라고 포장이라도 할만한
‘그런 우연’은 확실히 없을 것이라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묘사 혹은

선고

참으로 슬픈 풍경이다. 슬픈 풍경이라고 바삭하게 말하는 이 앵글 역시 슬프다. 덜 아프기 위해 길가에 떨어진, 떨어뜨린 흔적을 애써 파헤쳐서 지우고, 그로부터 나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았는데. 이제와 그랬다는 게 더 아프네. 어차피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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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