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던 글에서 다루던, 같거나 비슷한 주제로 다른 사람이 쓴 웰메이드 답안지 같은 글을, 내 글을 쓰던 중간에 발견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굉장히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든다. 너무나 반갑고, 세상 멋있고 맘에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내가 쓰던 글이 이 웰메이드 답안지를 그대로 패러프레이징하는 수준으로 답습하기만 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연히 글을 쓰기 전이나 중간에도 스스로의 경험, 관찰, 최소한의 조사는 어느정도 하고 쓰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이렇게 답안지가 먼저 뙇; 나와버리면, 마치 '처음부터 컨닝하려고 한 게 진짜 아닌데' 이미 스스로 오염되기(영향받기) 시작한 내 뇌와 손이 결국 그렇게 베끼기에 갇힐까봐.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보일까봐. 걱정된다.
별 수 없다.
쓰던 걸 빨리 쓰고, 맘에 드는 저 글(사실은 방송의 논평이다)을 얼른 소화해내야겠다. 곱씹고싶을만큼 맘에 드는 논평은 오랜만이야. 하도 오랜만에 '그나마' 각잡고 짧은 호흡과 비격식으로 도망치지 않고, 긴 호흡과 절제된 톤으로 뭔가 해보려던거라 쉽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힘이 들어가고 늘어지던 참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에피타이저를 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것처럼, 맘에 드는 저 논평을 맘껏 씹뜯맛즐하기 위해서 지지부진하던 내 글을 얼른 완성해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