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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

Neon Fossel 2022. 1. 23. 03:03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 밤

 

좋아하시네 ㅎ; 거의 항상 공연을 같이 하며, 형제같이 지내던 옆밴드에서 하던 노래였다. 그러고보니 저건 커버인가 자작인가...? 아직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

 

밀린 잠과 밀린 일이 남은 주말이었다. 중요한 약속 하나와, 그냥 그저 그런 인사치레 같은 약속 하나를 쳐냈다. 어차피 그저 그런 약속은 입에 발린 말과 어느정도 미안함에 상응하는 값어치의 상차림을 나중에라도 하면 될 문제다. 중요한 약속은 40시간 내로 다시 볼 사람이니, 그때 이해시켜주면 된다. 나는 일단 지금을 살아야했다. 스무 개 정도의 지뢰같은 노드와 코드를 거쳐갔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씩 손댈 때마다 스크롤은 끝을 모르고 증식했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스스로의 성격 때문인가 - 라고 자문해보기도 했다. 아니다. 어차피 아무일 없는척 덮고 넘어가봐야 분명히 2주 내에 각각의 마디에서 비명이 터져나올만한 문제였다. 정작 그때가 닥쳐서 일을 해결하려 하면, 할 일은 스무 배 쯤 늘어나있고, 게으르거나 비겁하게 눈감았던 스스로에 대한 자괴는 더 커질 터였다. 뭔가를 빠르게 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실수는 늘었다. 그래서 그냥 더듬더듬, 바보처럼 일하자는 생각으로 '맞는 것'을 설명해냈다. 그게 끝난 시각이 두시 반 쯤이었다.

원두커피를 내리고 싶었다. 그걸 기다리기엔 너무 피곤하고 조바심이 났다. 그냥 포트에 물을 올리고, 믹스 아닌 믹스 같은 커피중에 제일 좋아하는 걸 꺼냈다. G7. 커피를 담아서 내려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겨울이라 아직 중천에서 조금 더 내려가있는 달을 마주했다. 너는, 나는, 잘 있구나. 겨울인데 이상하게 겨울만큼 춥지 않은 날이 많은 겨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전 내린 눈은 아직 여기저기 녹지 않았다. 눈 냄새에 G7 커피 향이 섞이니까, 청량하면서도 그윽한 양가적 향이 같이 섞여서 좋다. 밀린 부재중 통화와 카톡 스물댓개를 확인했다. 상대를 불확실하거나 불안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뒤늦은 답장을 했다.

커피를 다시 들이키고, 토하듯 내뱉은 날숨을 청량하고 그윽한 들숨으로 다시 마신다. 아마도 살만한 것일 거다. 모든 것을 기억하되 기억하지 않는 방식으로 급하게 갈무리했다. 필요할 때 로드되게, 그러나 자거나 쉴때는 방해가 되지 않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아파트 로비로 다가서는데, 양손에 피난민처럼 짐을 이고 지고 있는 택배기사가 비슷하게 아파트 현관문으로 쇄도한다. 내가 좀 더 먼저길래, 문을 살짝 먼저 열고 기다려서 같이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잡고 같이 탔다. 타면서 '고맙다'고 하는 것 같다. 노래를 작게라도 틀고 있어서 완전히 정확하게는 듣지 못했다. 키가 크지 않고, 별로 늙은 티가 나지 않길래 그냥 어린 친구가 이 주말 새벽에도 기특하게 고생하나 싶었다.

갑자기 상대가 나에게 물었다. 이 새벽에 뭐하다가 이렇게 늦게 들어오시냐고. 재택으로 할 일 마저 하다가, 잠깐 밖에 나가서 커피 한 잔 하고 다시 들어오는 길입니다. 아이구 고생하시네요. [저는 원래 검도 관장인데...]. 그제서야 상대의 마스크 위로 눈을 봤다. 약간 눈주름이 졌지만, 날카로운 눈매. 이제 갓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쯤. 검도 관장님이 다시 검도장을 하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고생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