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글을 쓴다고 하면, 그 글의 내용이나 혹은 그 글을 쓴다는 사람은 '당연히 [따뜻하게 긍정적으로] 감성적이겠거니' 하는가보다. 세상의 모든 글과 작가도, 그리고 전업 작가도 아니긴 하지만 몇몇 종류의 글을 쓰는 나도, 항상 그렇지만은 않은데. 그래도 굳이 그 환상을 망치로 유리 깨듯 할 필욘 없겠지.
경운기 시동을 수동으로 걸 때처럼, 혹은 제초기나 전기톱 등의 작은 엔진에 줄을 당겨서 시동을 걸듯. 나에게 글은 그런 기능을 한다. 생각이 발생하는 건 머릿속이다. 어떤 대상 자체가 휘릭 스치고 지나가거나, 혹은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의 구조가 통으로 번쩍 하고 사라진다. 그런 뒤엔 써야 생각이 시작되고, 써야 그 시작된 생각이 굴러간다. 말하기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여러모로 물리적인 육체에 의존하는 방식이라서 때로는 좀 불편하고 구식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은 이 생각 이전에 별도로 떠올랐던 건데, '통 속의 뇌'라는 가설이나 아이디어의 한계가 이것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인간의 뇌를 따로 통 속에 넣고, 각각의 감각중추에 마치 신체가 있는 것처럼 신호를 입력해서 시뮬을 돌려주던가, 아니면 그 뇌(혹은 소프트웨어로 전환된 것)를 다른 신체에 넣을 때, 새로운 시뮬레이션 환경이나 새로운 육체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장면이 반드시 나온다. 아마도 우리 뇌는 컴퓨터의 CPU와 달라서, 신체가 기능하는 방식과 뇌의 사고체계가 긴밀하게 연관되어있지 않을까. CPU는 옆에 붙인 글카, 램, 스토리지, 보드, input/output 장치가 뭐가 됐든, 그냥 호환만 되면 나머지가 바뀌어도 알아서 잘 돌아가는데. 인간의 뇌는 그 고유한 신체의 장기나 감각기관, 운동기관들이 동작하는 방식에 더욱 고전적이고 복잡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그걸 신체와 분리해서 업로드/운영하거나, 혹은 다른 신체(기계적인 외골격 포함)에 옮기는 일에도 언젠가는 그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일기는 때때로 청중과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적절히 닥치고 살기 위해 필수적이기도 하다.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요즘 스스로와 타인 모두를 통해 종종 느끼는 편이다. 나든 남이든, 그 특정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아예 침묵하거나 혹은 거기에 맞는 다른 상황에서 말할 때까지 담아두려면, 일기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니까 자꾸 입 끝에 걸리는대로 대충 나불거리다가 여러 심리적 교통사고가 나는 걸 종종 본다. 때로는 관계와 상황에 맞지 않게 끝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서로의 일기를 실시간으로 교환하듯 정면충돌해보자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높은 확률로 둘중 하나는 쓸데없이 디테일하고 감정은 훨씬 모자르게 상대편 생각의 결론과 과정이 왜 기반부터 틀려먹었는지 증명할테지만, 대신 그 사람은 교양없이 잔혹하다며 평판의 손실을 입겠지. 정말 거기까지 가고 싶은 건가. 미드(라고 말하는 것도 이제 요즘은 좀 구태의연한 것 같지만)에서 종종 들리는 표현이자, 실제로 써보니까 되게 유용했던 표현이 있다. 'You really wanna go there?', 'You really wanna go that far?'. 이제와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할 말과 하지 않을 말, 그리고 그럴 상황을 분별하는 것' 자체가 문명이자 교양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나도 아직은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