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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팔의 밤, 긴팔의 새벽에

Neon Fossel 2022. 5. 20. 08:01

에로스는 우울증을 제압한다. 사랑과 우울증의 긴장 관계는 <멜랑콜리아>의 영화 담론을 처음부터 규정한다. 영화의 음악적 틀을 제공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은 사랑의 힘을 강하게 환기한다. 우울증은 사랑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또는 불가능한 사랑이 우울증을 낳는다. 아토포스적 타자인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동일자의 지옥 속으로 돌입할 때 비로소 저스틴에게 에로틱한 갈망이 불붙는다. 강가 절벽 위의 누드 장면에서 관객은 사랑하는 한 여인의 몸, 쾌락으로 충만한 몸을 본다. 저스틴은 죽음을 가져오는 행성의 푸른빛 속에서 기대에 찬 표정으로 팔다리를 활짝 벌린다. 이 장면은 마치 저스틴이 아토포스적 천체와의 치명적인 충돌을 더없이 갈망하는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점점 다가오는 재난을 그녀는 연인과의 행복한 합일처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이졸데 역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환희를 느끼며 “세계의 숨결이 불어오는 우주”에 몸을 던진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에로틱한 이 장면에서 다시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이 울려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음악은 에로스와 죽음, 묵시록과 구원의 근친성을 마술적으로 환기한다. 역설적이게도 저스틴을 살아나게 하는 것은 임박한 죽음이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녀는 타자를 향해 열린다. 저스틴은 이제 나르시시즘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클레어와 그녀의 아들을 따뜻하게 보살핀다. 영화의 진정한 마법은 우울증 환자였던 저스틴이 사랑하는 여인으로 변모하는 기적적 과정에 있다. 타자의 아토피아(무소성)는 에로스의 유토피아임이 드러난다. 라스 폰 트리에는 영화 담론에 일정한 방향을 주고 특별한 의미 구조를 바탕에 깔기 위해 유명한 고전적 회화를 곳곳에 전략적으로 삽입한다. 이를테면 초현실주의적 도입부에는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의 <눈 속의 사냥꾼들>이 삽입되는데, 이 그림은 관객을 겨울의 깊은 멜랑콜리 속으로 침잠하게 한다. 그림의 배경 속에서 풍경은 물가에 닿아 있고, 브뤼헐의 그림 앞에 페이드인되는 클레어의 영지도 그러하다. 중첩된 두 광경은 유사한 공간적 구도를 보이며, 이로써 <눈 속의 사냥꾼들>이 표현하는 겨울의 멜랑콜리는 클레어의 영지로 전이된다. 어두운 색 옷을 입은 사냥꾼들은 몸을 깊이 숙인 채 집으로 돌아온다. 나뭇가지에 앉은 검은 새들은 겨울 풍경의 황량함을 더해준다. 성자의 그림이 그려진 “사슴골”이라는 여관 간판은 거의 떨어져내릴 듯이 비스듬히 걸려 있다. 이 우울한 겨울 세계는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이어서 라스 폰 트리에는 하늘에서부터 검은 부스러기들이 천천히 내려와 마치 화상병처럼 그림을 집어삼키게 한다. 우울한 경루 풍경의 뒤를 잇는 것은 저스틴이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오필리아>와 매우 닮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회화적 장면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오필리아처럼 손에 화환을 들고 물 위를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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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예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기이하리만큼 거기에 무뎠지만, 나는 어쩌면 알고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마를 따라 위로 올라가다가 앞머리가 시작되는 부분을 보고 있다. 엄청 빽빽하고 진한 머리숯이 신기하다. 조금만 더 빽빽했으면 울버린처럼 될 뻔.

잠도 정말 열심히 진심으로 잔다. 쌔근쌔근-이 아니라 쌔액쌔액 크읍크읍 푸우우아(…). 잠을 자면 호르몬의 안정과 피로로 생긴 물질들의 해독, 그리고 뇌신경의 긴장 이완 등의 효과가 있다던데. 정말 그런 자가치유과정을 열심히 칙칙폭폭 돌리는 느낌이다. 너는 모든 게 다 진심이지. 얘기하는 거, 먹는 거, 노는 거, 자는 거 모든 게 다 진심이고 끝까지 남김없이 강렬하게. 대단하다. 자는 것까지 참나. 밥 먹은 직후부터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태워버리는 희한한 종이다. 그래서 항상 나보다 더 많이 먹고도 짜증나게 살이 안 찌는 건가. 잠을 자면서도 몸이 식지를 않는다. 어으 뜨거.

이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처음이다. 먼저 기절하지 않고 자는 걸 구경하는 게. 근데 괜히 되게 예뻐보이네.

자꾸 반응이 온다.

건드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