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북클럽 '김소영'입니다>의 밀린 최근 에피를 들으면서 프레첼을 먹고 있다. 최근 며칠 중 가장 평온한 순간이다. 돈 받고 글 쓴 지 30년이 되었다는 삼촌뻘 아저씨의 단답형 수다(?)가 이어진다. 책을 손에서 놓은 지 또 몇 주에서 달 단위가 되어가는데 읽었어야 할, 읽고 싶은 책은 왜 저리도 많이 나오는 걸까. 읽기에도 벅찬 나는 언제쯤 다시 쓸 것인가. 가을엔 '가을이 이래도 되나' 싶게 춥더니, 겨울의 한복판엔 '겨울이 이래도 되나' 싶게 훈훈한 낮이다. 내가 아는 겨울은 3월 말에 저 라디오 프로그램을 그만두었고, 내가 아는 가을은 4월의 한가운데쯤 사람들로부터 어딘가로 사라졌다.
달이 차고 기우는 사이클의 수십 바퀴 전 언제쯤, 완전히 끝내자는 뜻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발음을 하는 순간 머릿속으로는 '이 말의 뜻이 잘못 이해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뜻은 오롯이 전달되었다. 대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말을 오히려 정반대 혹은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코믹하거나 로맨틱한 의미에서의 <사랑한다고 생각해>라는 제목을 가진 글이나 시나리오를 써본다면 어떨까. 아무런 내용도 미리 준비해놓진 않았지만 단순히 저 제목을 쓰기 위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피엔딩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행운처럼 훌쩍 다가와 피어난다.
그러나 그 문턱의 직전까지는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채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버텨온 수많은 노력들이 서려있을 터였다.
어떤 문턱의 직전까지는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채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버텨온 수많은 노력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해피엔딩이 되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행운처럼 훌쩍 다가와 피어난다.
라디오 북클럽의 무뚝뚝하면서도 수다스러운 인터뷰를 듣다가, 내용과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떠오른 말이다.
요 며칠, 그리고 심지어 오늘까지도 한순간에 프로세싱하기가 좀 어려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이 사람들과 사회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듯, 바닥을 깨고 바닥으로 계속 내리쳐지는 느낌이다. 괜찮아야 할 텐데. 생각이 그쯤 이르렀을 때, 갑자기 간담이 서늘한 가능성과 스스로의 무력함이 어딘가에서 치밀어 올랐다. '설마'. 그리고 난 아무것도 확인할 수 있는 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설마.
우리가
올 한 해도 무사히 안녕했기를
내년도 무사히 안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