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무모할 정도로 찬란한 비행

Neon Fossel 2025. 3. 5. 01:42

인디로 활동할 땐, 앞선 글의 장르 정체성 문제와 마찬가지로 내가 당사자이자 내부자라서 그게 얼마나 무모하게도 겁을 상실한 작두타기인지 잘 몰랐다. 버스킹을 하겠답시고 통기타 두 대, 젬베 하나, 찹찹찹 에그셰이커, 뿌뿌뿌 카주 두어개만 가방에 찔러넣고 기차에 올라타서 사람 많은데만 골라서 전국 지도를 다 지우고 다니는. 홍대 한가운데서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치즈떡볶이랑 컵라면을 중간중간 퍼먹으면서 가사도 없는 연주로만 대충 삘 오는대로 잼을 하다, 신청곡이 들어오면 악보도 없는 주제에 '아무거나 드루와 드루와' 하면서 '니들이 이것도 바로 찍어내나 보자'라고 짖궂게 노려보는 관객들의 칼 끝에 서보고. 관객이랑 너무 가까워서 소근 혹은 수근거리는 소리도 다 들리고, 표정 하나까지도 다 보일 거리에서 딱히 일반적으로 좋아하기 힘든 장르의 자작곡(...)을 뻔뻔하게도 원래 있던 노래처럼 태연하게 노래하고 연주한다던가 하는.

 

내 기억에도, 남들이 대충 보거나 듣기에도 굉장히 낭만넘치는 시간들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중간에 등장한 표현대로 칼 끝에 서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버스킹을 하면 사람들의 얼굴을 볼 겨를이 없어서 아래에 발걸음만 봐도 즉시 반응을 알 수 있다. 가던 발걸음이 멈추고 둥그렇게 반원이 만들어지는지, 그랬던 반원이 슬슬 흩어지는지,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그 자리에 붙박힌듯 계속 서있는지. 공연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입이 떡 벌어지거나 손을 입에 대고 눈을 못 뗄 정도로 좋아하는지, 갑자기 하나둘씩 폰을 보는지, 아니면 미뤄뒀던 장실탐을 다녀오는지, 그도 아니면 끝나고 와서 싸인도 없는 우리에게 혹시 앨범을 냈느냐, 싸인을 미리 받아둘 수 있냐 물어본다던지. 우리가, 내가, '잘 한 걸까, 잘 하고 있는 걸까'라는 걸 숨길 수 없는 반응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애정과 시간을 있는대로 갈아넣어서 만든 어떤 곡, 그 곡의 어떤 가사나 멜로디, 혹은 연주 전개 등. 어떨땐 노력하고 의도한만큼 반응이 좋을 때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또는 이건 내가 봐도 우리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합의되지 않았고, 딱히 맘에 안 드는 부분이라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는' 부분을 그대로 안고 나가서 보여줘야할 때도 있다. 그게 여실히 들켜서 시큰둥한 반응이 여과 없이 직격으로 들어오면 세상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게 내가 뭐랬어'라는 생각에 팀원이 속으로 밉기도 하고. 혹은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을 관객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하고. 더 환장하는 케이스는 반대로 그게 오히려 반응이 좋아버릴 때다. 이게 왜 좋지.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이러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되는 걸까. 지금까지의 예상은 어디서부터 틀린 걸까.

 

예술 혹은 작업으로서의 모든 성과는 사실 공통적으로 생산과 소비에서의 감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내가 이걸 만들 때 얼마나 사려깊게, 좋은 의도와 방향성으로, 꼼꼼하고 치밀하게 잘 만들었는지는 최종소비자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 고생과 의도, 맥락이 전혀 가닿지 않는 채 오로지 결과만으로 평가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평가가 일단 긍정적이면 나중에야 맥락과 의도까지 좋은 서사로써 알려지고 소비된다. 이 분리가 그대로인채 거리와 빈도만 가까워지면 그만큼 살벌한 칼 끝에 서기, 혹은 작두타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요즘도 그런 무모한 비행을 일삼는(?) 모든 일과 사람들은 더욱 더 숭고할지도 모른다. 생산과 소비에서의 줄일 수 없는 감상이라는 벽을 어떻게든 얇게 만들거나 허물기 위해, 자기가 직접 그 칼일지도 모르는 시선들 앞에 몸을 내미는 것이다. 이 행위의 숭고미는 두 가지 차원에서 나온다. 첫째, 감상 혹은 거래의 상대방인 관객(소비자) 만족의 극대화를 위한 최대한의 헌신, 즉 신의성실함. 둘째, 창작자, 창조자인 본인의 자아가 온전히 발현되기 위한, 가장 위험하고도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고 감내하는 대담함.

 

지금도 길거리에서, 소극장에서, 그리고 기술 혁신 덕분에 어느 분야에서든 가까워져버린 그 거리에 서있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나의 저때는 굳이 저런 숭고함을 가지고 활동한 것도 아니었고, 나의 지금은 저런 경험과 어느정도 멀어져 있지만. 그리고 칼끝일 것 같아서 긴장되고 두렵기도 한 그 자리는, 굳이 거기까지 와서 보고 듣는 사람들이라면 사실 칼이 아니라, 그 수가 몇이 됐든 기대하고 응원하는 눈망울인 경우가 많다. 어떤 시선을 선택할지는 당사자에게 달린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소 위험하고 살벌해 보일지라도 그때와 지금의 모두를 응원한다. 그 무모할 정도로 찬란한, 아름다운 비행을.

 

좋아하는 노래 중에 후렴 가사만 떼어서 아무 상황에나 갖다붙여서 듣는 노래가 있다. 원래 가사가 별로 있지도 않고, 보컬도 그냥 악기처럼 뭐라고 소리가 나올 통로가 필요한 정도로만 가사를 쓰니, 가사가 그닥 중요하지 않은 밴드다. 그래서 그냥 아무때나 아무렇게나 의미를 갖다붙여도 돼서 오히려 편하다.

 

여기선 '반가운 당혹스러움', '당혹스러울 정도로 반가움' 정도로 들리는 것 같다.

 

I can see your eyes again

never find the place where to begin

I said I can see your eyes again

never find the place where you and I began

 

"Pacific" - Glen Che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