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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Neon Fossel 2020. 1. 20. 06:37

군썰연재_5(오늘 아예 진도 빼거나 끝을 보려고 달렸는데, 아쉽게도 그러진 못할듯)

 

내가 했던 ‘근무’의 실체는 이렇다. 30-40개정도의 통화채널, 7개의 모니터, 수기 기록, 전산 기록, 주요사항을 매일 아침의 보고 회의에 바로 쓰일 수 있도록 요약된 ppt 실시간 작성, 전방 관측소에서 전송하는 실시간 감시화면 12개. 여기서 쏟아지는 정보를 위로 아래로 보내고 받는다. 전 부대 병력현황, 무장 현황 등을 몇 시간에 한번씩 예하부대에 닥달해서 취합한 뒤 보고하고. 그러다 하루에 한 번 불시에 실제 상황과 비슷하게 난리가 난 것 같은 모의 상황을 상급부대 순찰자가 아무데서나 던지면, 보고체계에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전파/보고하고 조치하는지 일퀘(...). 약 20시간 남짓동안 전화 3-400통, 손으로 쓴 일지는 A4 20페이지, 작성한 슬라이드는 20페이지 등등이다.

 

그러다 무슨 긴박하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상황을 역추론해서 미싱링크를 찾아낸다. 보고하는 시간은 언제고, 실제 상황이 일어난 시간은 언제고, 누가, 무엇을+어떻게 했는지를 항상 취급하니.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은 정보가 있는데, 그 이후 예하부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중간에 빠진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을지에 대한, 가능한 시나리오를 우선 펼쳐놓는다. 그리고 ‘어떨 것이다’라고 가설을 세워서 그쪽으로 파는게 아니라, ‘확실하게 무엇은 아니다’라는, 아닌 것부터 가능성을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이럴 경우, 오히려 꽤나 정확하게 몇가지 안으로 가능성의 가지는 추려진다. 무슨 일이 있었고, 그것이 보고되지 않거나 지연된 시간은 얼마이며, 그동안 저들이 했을 고민과 조치는 무엇이 있고, 그 결과로 지금 드러난 이런 행동이 나왔거나, 혹은 앞뒤가 안맞는 상황이 되었거나. 그래서 실제로 상황이 벌어졌을때 우리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할법한 행동에 걸리는 시간, 그 행동 자체를 상상하거나 예측하는 일을 많이 했다. 나중엔 그것도 부족해서,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다고 직접 전방 부대를 6개월간 떠돌이로 파견을 내보냈던 적도 있었다.

 

근무가 아닌 업무/과업의 실체는 이렇다. 보안 측면은 부대 내의 비밀 취급인가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되며, 그 사람들이 전역이나 기타 이유로 신분에 변동이 있을 때 비밀 관리나 등급제한을 똑바로 하는지 감시. 간부들이 소지한 휴대폰이나, 일반 병들이 소지한 CD플레이어와 CD 등에 잘못된(...여러가지 의미로)데이터나 기능은 없는지 확인하고 인허가, 부대 내의 군용 암호장비 자체에 대한 취급/관리, 주기적인 암호의 관리, 부대 내 모든 정보의 생성/소멸에 대한 트래킹.

 

정보 측면은 그 외에 부대 내에 실상황이나 훈련에서 쓰여야 할 아군/적군의 지리적, 군사적, 통계적 데이터를 상급부대에서 비밀이나 첩보 형태로 전달받아 자료를 만들거나, 필요한 경우 직접 데이터를 계측하거나 예측해서 산출한다.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데이터가 비밀등급이라서, 어차피 업무에 편하게 쓰겠다고 대강 몇 부 프린트 하는 게 안 됐었다. 보는 즉시 외우거나, 필사로 메모했다가 일이 끝나면 세절해서 없애거나.

 

전방부대답게 가끔 실상황/훈련으로 부대가 5분대기 등의 출동이 걸릴 때가 있는데, 남들처럼 방탄복 입고 총 든 채로 트럭에 타는 게 아니었다. 옷차림이나 장비는 스타크래프트의 고스트와 비슷하다. 일반 병들이 잘 안쓰는 야간투시경과 촬영용 카메라(이래서 우스갯소리로 별명이 디카병...이었다, 별명부자 병과), 필기도구(...’곧 죽어도 써야지 으이구’라는 푸념이 습관이었다), 현장보존 및 감식용 장비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몸과 몸의 근처에 이고 지고 하느라고 총은 어쩔 수 없이 미군들처럼 발포 직전 상태로 몸 앞에 맨다. 사실 마지막 부분이 다른 병과에서 보기에 가장 위화감이 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한국군이어서, 일반적으로 총은 옆이나 뒤로 매고, 최대한 우발적으로라도 발포나 충돌에 의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보수적으로 간수한다. 출동 이후 상황 발생지점에 거의 도착할 때쯤, 정말로 실탄사격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제서야 장전하고, 그렇더라도 안전상태로 최대한 몸에서 멀리한다. 근데 우리는 몸에 매단게 이미 많아서, 이랬다가는 정작 필요할 때 뒤뚱거리다가 장비에 깔려 죽고 총은 쏘지도 못한다. 그래서 저러고 다녔다. 타는 차도 남들처럼 트럭에라도 타면, ‘야 오늘은 진짜냐, 뻥카 아니야?, 아으 넘모 춥다’이러면서 가는 동안 긴장이라도 풀거나 심심함이라도 달랠 수 있는데, 우리는 지휘관이나 간부와 함께 지프차 뒤에 장비들 뭉텅이와 같이 구겨지듯 탔다. 가는 동안 군용 장비와 상용 휴대전화 여기저기로 긴박한 보고가 빗발치고, 도대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일지에 급한대로 휘갈겨 쓴다. 나중에 힘들게 재구성하거나, 그마저도 그 기억이 틀려서 보고 조작이라는 의심으로 영창에 갇힐 위기에 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글씨 괴랄하게 썼다고 한소리 듣는 게 나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 급한 상황이라고 아마추어처럼 뇌절 오면 쓰겠냐며 대대장이 예하 부대 중대장들을 까는 근거자료(...)로 쓰였다.

 

그러다 가끔, 전체 전투부대가 아니라 우리 정보병과만 출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날이 가장 난이도가 높다. 그나마 전체가 다 저렇게 나갈 경우, 진짜 전쟁나듯 큰일날 게 아니라면 서로 진짜로 ‘맞을 뻔(혹은 쏠 뻔)’하다가 마는 적이 많았다. 근데 우리끼리만 나가는 날은, ‘어지간하면 맞을 수도 있다’의 위험이 있거나, ‘엄청 비위가 상하는 것을 다뤄야 하는’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이런 날은, 안 그래도 밥먹듯이 예외를 만드는 다크템플러인데, 단체로 예외가 되었다. 새벽에 커맨드센터에 있다가 말고 갑자기 튀어나갔다가 오면 주로 남들은 아침밥 먹으러 츄리닝입고 줄 서고 있을 때였다. 지프차에서 토해내듯 뱉어지면, 우리 둘 셋은 긴장과 노가다의 결실로 흠뻑 젖은 군복과 방탄복을 반쯤 열어젖히고 산더미 같은 장비와 함께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모종의 이유 때문에 군번줄도 없고, 훈련소에서 달고 나온 그 좋아하는 빨간 명찰도 떼버린 상태였다. 군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간부이거나, 전방부대에 온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는 간부들이 가끔 시비를 걸었다. “너넨 무슨 미군이야? 왜 총을 장전하고 앞으로 흉악하게 들고 다녀, 철모랑 전투복에 명찰은 다 어디갔어, 지금 복장이 이게 뭐야, 밥 먹을 시간인데 밥 안먹냐” 이런 식으로. 그러면 주변에 있던 간부중 우리 사정을 아는 사람이 와서 “쟤네 그거, 아이 그거에요. 일단 그냥 냅두면 돼요.” ‘그거’의 정체는 ‘쟤넨 출동했다가 왔으니 어차피 밥이든 뭐든 시간에 못 맞춘다, 그리고 쟤네 가끔 저거 한번 갔다오면 엄청 쫄아서 혹은 비위가 상해서 두 세끼 밥 못먹는다, 어차피 정보장교랑 대대장이 다 아는거고, 알아서 하는 애들이니까 내버려 둬라, 물어봐야 대답 못 듣는다’ 정도이다. 그렇게 건물 옆에서 한 30분을 멍때리고 널브러져 있다가, 정신머리와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들어간다. 그렇게 자주 있던 일은 아니었지만, 웬만하면 없었으면 좋았을 일들이었다. 그저 매뉴얼과 교본에만 있었어야 할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