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 말, 윤성선의 소개로 와우를 시작하고, <Why do we fall>이라는 간판밖에 남지 않고 사람도 거의 없는 얼라 길드에서 만렙을 찍고, 글로벌에서 레이드를 입문했다. 영웅 골팟 선수급으로 고였을 무렵, 그 사이에 뒤늦게 와우를 시작해 나만큼 고인 쪼꼬가 길드 홍보 게시판에서 괜찮은 데를 찾았다면서 <달빛 수호자> 길드를 추천했고, 그곳으로 같이 옮겼다. 엄연히 말하면 두 번째, 실질적으로는 처음으로 유의미한 길드생활을 시작해본 곳이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길드였다. 길마는 인벤 기자 출신이어서 기획, 홍보 등을 야무지게 잘 하는 사람이었고, 부길마인 남편은 직업은 몰랐지만 퇴근이 칼같고 빨랐(...)으며 와이프인 길마를 잘 백업하는 사람이었다. 길드 밴드, 단톡방 등도 아기자기하고 활발했고, 쐐기팟은 늦은 오후부터 새벽까지 항상 서너개, 길레는 거의 풀파에 나중엔 길드원만으로 골팟 선수를 꽉 채워서 영웅 골팟도 운영했다. 길드 신화도 글로벌보다 진도가 빨랐고. 따스하고 활발한 친목과, 글로벌은 손 댈 필요도 없이 넘치는 컨텐츠 커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유토피아였다.
그런 컨텐츠는 길마, 부길마 부부가 약간 거들면서 ‘코치’라는 사람에 의해 주도됐다. 스포츠의류를 소량으로 찍어서 파는 사람이었는데, 까무잡잡하고 땅딸막한 외모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이선균이랑 똑같았다. 유머랑 센스도 있고, 레이드랑 쐐기를 가리지 않고 잘했다. 약간 까불거리긴 해도 매너도 나쁘지 않아서 친하게 지냈다. 그 사람이 길드원 기반으로 영웅골팟을 일주일에 두세개, 길드 신화팟을 두개씩 찍어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나랑 쪼꼬는 이미 글로벌에서 올주황에 선수로 뛰다가 들어왔으니, 걸핏하면 우리를 찾기도 했고.
그 무렵, 내가 글로벌에서 레이드를 입문하던 시절에 인상깊었던 공대장이 둘 씩이나 그 길드에 들어왔다. 쌩초행을 데리고, 사람을 조지지 않으면서도 스마트하고 젠틀한 능력으로 학원팟 올킬을 씹어먹던 ‘촉수현’. 나에게 처음으로 로그컷의 쓴맛을 몇 번씩이나 느끼게 해줬던, 콧대높고 얄짤없지만 똑똑했던 공장 ‘호찌’. 들어오자마자 서로를 알아봤다. 내가 한창 초보일때부터 글로벌에서 친추하고, 좀 커서 선수로 뛸 때까지 쭉 같이 다니다가, 내가 이 길드에 들어오고 나서 글로벌로 빼갈 캐릭이 부족하다보니 연락이 뜸해졌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친목과 컨텐츠라는 유토피아에 이어, 롤모델들까지 알아서 길드원으로 굴러들어왔다. 더할나위 없었다.
그러면서 새벽 쐐기팟에서도 친해지기 시작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길레가 아닌 글로벌 학원팟만 죽어라 모아서 남 좋은일 하고 다니고, 길드원들 부캐 데려다가 탱으로 퍼맞으면서도 좋다고 쉴새없이 개그치면서 밤새 쐐기 주차랑 레이드를 돌던 ‘빵’님. 예전 즐거운 공격대에서 월드 2위킬까지 할정도로 하드하게, 지금까지도 쭉 그렇게 하고 있는 PT샵 주인 ‘에이블’님. 그 두 형들을 주축으로 나랑 성격이랑 캐릭이랑 나이까지 비슷한 ‘펭귄’, 그냥 폼생폼사 ‘쇼리’, 뭔가 그늘지고 이상한데 웃긴 동갑애 ‘그늘’, 기타등등(기타등등에 미안하다. 닉은 다 기억나는데 TMI는 이미 충분하므로). 그렇게 일곱명-열명 정도가 한파티 반씩 새벽내내 쐐기를 돌았다. 나처럼 프리랜서도 있고, 가게 사장들은 오픈하고 자면 되니까 그렇고, 몇몇은 당시 기준으로 그냥 진로를 수정중이라 놀았기에 가능했던 정신나간 일정. 다른게임 이야기, 요즘 글로벌 이야기, 연애얘기, 연애하면서 게임하다가 삼족을 멸할뻔한 얘기, 남자가 이맘때쯤 하는 고민 중 가장 쓸데없는 고민은 무엇인가, 와석들의 옛날 와우썰, 요즘 먹고사는 얘기, 와우 내 룩변덕질얘기 등등. 그렇게 1년을 오후랑 저녁에 일하는 시간을 빼고 열댓명이 붙어서 떠들었다.
그 유토피아+롤모델공장들+식구같은새벽쐐기반이라는 가히 실현불가능해보이는 행복조합에서 꼬박 1년쯤 있었다. 길드에 부길마 포함 공장이 다섯이었다. 가끔 묶였어도 공장들 도와주러 글로벌을 놀러가면, 타길드 사람들이 보기에 글로벌 팟에서 킬 빠른 공대 두세개에 가보면 공장이랑 딜힐 센 공대원이 다 <달빛 수호자>라고 달고 있으니까, 잘하는 사람이랑 공장만 모아서 만든 길드냐고 묻는 해프닝도 종종 있었다. 주3회 길드 영웅골팟, 주2회 길드 신화, 가족일정이나 데이트, 지인모임 하는 날 하루를 제외한 모든 날 쐐기(라 쓰고 토크쇼)스핀, 그리고 내 외부정공 주2일. 공연이나 녹음에 객원 세션으로 연주하고 오는 날이기라도 하면 몸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하루에 거의 무조건 레이드 2–1개, 끝나고 자기전까지 쐐기. 그래도 좋았다. 이 때는 Neonflower->Neonapple->초코초절임, Neonmaple->오레오파절임, Neonpurple과 그 외 모든 분신들은 생성되기 전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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