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속에서 맴도는 몇몇을 덜어낸다.
갑자기 동 트기도 전에 일어나서 냅다 세수부터 했다.두 번의 운석충돌급 싸움과, 도합 20일 정도의 간헐적 온/오프 밤샘. 3개월여의 준비기간이 처음으로 중간 시뮬레이션 되는 날이다. 챙기고 응원하고픈 날이다. 매번 개기기만 하면 이 관계가 만들어지지도 않았거니와, 소개해준 형과 그렇게 오래 잘 지낼수도 없었을 거다. 세시간 쯤 잤나. 졸립진 않은데, 아직 추운 새벽바람이 볼을 때리니 냉큼 집에서 쉬다가 원래 일정대로 점심깨나 나가고 싶다. 아니다. 그러기엔 이미 싸들고 내려온 짐이랑, 잠 깨려고 찬 물을 얼굴과 목에 들이부은 노력이 아깝다.
강변북로와 이수-사당이 막히기 직전 시간을 간신히 뚫었다. 이 두 군데만 안 막히면, 사실 이 좁은 땅덩어리는 심지어 충청도 까지도 그리 먼 길이 아니다. 언젠가, 서울 중심부로 집을 한 칸씩 진입하며 사는 게 꿈이라던 후배가 생각났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어쩜 이렇게 제대로 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는 언제든 필요에 의해 서울에 올 수 있는 교통과 적당한 번화가라는 편의는 취한 채로, 말도 안되는 주거비용과 교통체증을 센스있고 지혜롭게 피하는 근교 도시가 좋다. 여태 살아온 곳도 그렇고, 앞으로 살 곳도 위치가 어디든 그랬으면 좋겠다.
도착하니 스탭 제외하고 1등이다. 내 이럴줄 알았지. 아직 쌀쌀한데, 공연장 내부는 동굴같아서 더 춥다. 심지어 대기실쪽은 동굴 느낌이 제곱이라 겨울 김장김치처럼 차갑게 숙성되는 느낌이 든다. 원래 어디든 이렇다. 차에서 20분쯤 기다리니, 여기저기서 트럭이랑 요주의 인물들이 도착한다. 인사하면서 생색만 내고 다시 차에 짱박힐까 하는데, 거미줄같은 사운드잭 뭉텅이랑 콘솔, 믹서, 스피커, 이펙터 보드, 악기 등을 한 두 개씩만 들고 왔다갔다 하느라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에이, 어차피 다른 일정 다 빼놓은 날인데 놀면 뭐하냐. 운동할 겸 일이나 해야지. 는 30분 만에 매우 스뜌웁삗한 생각이었다는 결론으로 바뀌었다.
- 아이고오, 편곡이 이 꼭두아침(?)부터 웬일이십니까, 장갑은 뭐에요.
- 나 원래 음향 렌탈업체에서 알바할 때, 혼자 회사 봉고차 끌고다니면서 공연장 한 개 분량 혼자 다 세팅하고 다시 회수하고 했었음. 몰랐지?
- 육체노동 하시는 건 처음봐서 ㅋ 하긴 근데 첨에 몸만 봤을 때 힘 쓰는 일 하는 사람인줄.
- 힘도 쓰고 머리도 쓰지. 하여튼 쓰리디 업종이야.